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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방송 잘 타는 전문가 믿을 수 있나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22-06-14 18:19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방송 잘 타는 전문가 믿을 수 있나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여러 예능프로그램에 부동산 전문가로 나온 A 씨가 공인중개사가 아니라고 한다. 공인중개사협회가 조사한 결과 그는 부동산중개법인의 중개보조원으로 확인됐다고 알려졌다. 지난 달 방송된 KBS 2TV 예능 '자본주의학교'에서 그는 자신이 '공인중개사 10기'라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강남구청이 수사를 의뢰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A 씨의 예능 출연에 대해 이미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수많은 사람들의 자산을 불려줬다며, 그 액수가 무려 6조 원에 달한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연예인들이 그에게 투자 상담을 의뢰한다고 했다. 이런 내용들이 여과 없이 방송되면 일반 시청자들이 자칫 그 전문가를 맹신하게 될 우려가 있다.
그래서 A 씨의 잇따른 예능 출연에 대해 신뢰성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가 나왔었다. 그런 보도까지 나왔을 정도면 당연히 그 이후 출연에 대해서는 제작진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내보내는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터진 공인중개사 사칭 논란은 결국 방송 제작진이 가장 기초적인 자격 문제마저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냈다. 이런 기본적인 부분마저 확인 없이 방송한다면 방송내용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방송의 위력은 엄청나다. 시청자는 자기도 모르게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를 신뢰하게 된다. 방송에 수시로 출연하면서 방송 출연자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잘 아는 나조차도, TV를 시청하다 보면 화면 속 전문가를 뭔가 특별한 존재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방송내용은 신중하게 선별되어야 한다. 검증 없이 전문가를 내세운 방송 때문에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과거에 방송에서 성공한 주식투자자, 청담동 슈퍼 개미 재력가, 투자전문가, 이런 식의 이미지로 소개된 출연자가 있었다. 한 예능은 그를 '청담동 백만장자'로 소개했고, 그가 재테크나 금융 관련 이야기를 할 때 옆자리의 출연자들이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고 말하며 경탄의 시선으로 쳐다보는 장면을 지속적으로 방영했다. 또 다른 프로그램에선 그 투자전문가의 화려한 생활상을 소개했고, 다른 프로그램에선 이른바 관상전문가를 내세워 '돈을 엄청나게 벌 관상'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방송들을 보며 시청자는 그를 믿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실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인터넷에서 대출까지 받아가며 투자한 돈이 반토막 났다는 노인, 가정이 파탄 나거나 아이를 유산했다는 사람들, 전 재산을 날리고 월세방을 전전한다는 사람, 등록금을 날렸다는 학생 등이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세밀한 부분들의 사실관계를 모두 알 수는 없다. A 씨가 고객에게 6조 원을 벌게 해줬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것과 별개로 중요한 건 방송의 원칙이다.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방송은 큰 힘을 가졌으니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시청자가 믿을 수 있는 내용을 내보내야 한다. 전문가를 내세우려면 그에 대한 기본적인 확인 정도는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방송 제작진은 그런 확인이나 신중함은 뒷전이고, 그저 말을 잘 하거나 외모가 방송친화적인 사람들을 최우선적으로 출연시킨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런 사람들 중에 신뢰도가 높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과거 예능에서 소개된 의사가 의료사고를 잇따라 일으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예능으로 유명해진 또 다른 의사는 '이 약만 먹으면 몸이 달라진다'는 식의 정체불명의 건강식품을 팔기도 했다. 전문가들을 내세운 방송으로 인해 효소 열풍, 하수오 열풍 등이 터졌었는데 그것이 과도했음이 나중에 드러난 바 있다. 하지만 그런 열풍을 주도한 전문가들은 계속 방송에 나왔고 일부는 사적으로 건강식품을 팔기도 했다.

요즘엔 이른바 '솔루션' 방송이 유행이다. 어느 전문가의 해법으로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된다는 설정이 많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가 전지전능한 해결사처럼 부각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편집과 설정에 의해 과장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정말 사실 그대로를 내보내면 방송이 밋밋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제작진이 놀라운 문제해결 스토리만을 고르거나 꾸며 내보낸다는 것이다. 이런 관행 속에서 언제든 시청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제작진의 책임감이 요청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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