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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현장] 바이든이 저격한 `탐욕 죄`

김광태 기자   ktkim@
입력 2022-06-20 18:07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DT현장] 바이든이 저격한 `탐욕 죄`
미국의 물가가 40여년 만에 최악 수준으로 치솟았다. 여론이 들끓었다. 희생양이 필요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집권 여당 민주당은 물가난의 배경으로 독점적 대기업을 지목했다. 그리고 매스컴이라는 광장으로 끌고왔다. 그들에게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이라는 죄명을 목에 씌우고 돌을 들었다. 대기업들의 죄명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핑계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필요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는 것. 고삐 풀린 고물가에 대기업이 기름을 붓고 있다는 주장이다. 다시말하면 '탐욕이 끌어올린 인플레이션'이 그들의 중죄였다.


미국이 28년 만에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물가 잡기 전장에 선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민이 꽤나 깊겠다는 것을 짐작해본다. 하지만 그의 최근 어록에서 불안과 초조감이 엿보인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합적인데, 대기업에게 그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모양새다.
그는 먼저 20%가량 치솟은 육류 가격을 겨냥했다. 4곳의 대형 육류가공 업체를 향해 쏟아낸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을 끈다. 그는 "경쟁 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그건 착취"라고 했다. 이들 업체들은 소고기 시장의 85%, 돼지고기 시장의 70%, 가금류 시장의 54%를 장악하고 있다. 이들이 탐욕으로 시장을 왜곡해 가격 인상을 초래했다는 건데, 누가 봐도 원인 분석이 다분히 의도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주엔 석유회사들을 불러들이겠다고 했다. 미국 휘발유 가격은 현재 갤런(약 3.8L) 당 5달러(약 6400원)를 넘어섰다. 비난을 받고 있는 대형 석유회사는 마라톤 페트롤리엄, 발레로 에너지, 엑손모빌 등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쟁 중인 상황에서 정상가보다 훨씬 높은 휘발유 가격으로 인해 미국 가정이 피해를 입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정제 부족이 유가보다 가스 가격을 더 빠르게 상승시켰다"라고 직격했다. 석유회사들을 손보겠다는 공개 경고장이었다.

궁지에 몰린 바이든 대통령은 외교정책까지 수정하는 양상이다.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로 사우디 왕족이 지목되자 '왕따'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유가 인상 앞에 궤도를 바꿨다. 체면까지 구기고 다음 달 '석유 왕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석유공급 확대를 호소한다는 계획이다. 또 국가수반으로 인정하지 않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도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해 석유 공급 확대를 시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이는 바이든 지지율 하락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현재 그의 지지율은 42%로 최악 수준이다. 비록 오차 범위 내이기는 하나 전임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4% 지지율을 받았다. 현재 투표하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오는 2024년 백악관을 되찾을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인플레가 미국의 정치 지형까지 바꾸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 원인에 대한 분석이 쏟아진다. 코로나19 회복기인 지난 2021년 소비수요, 공급망 문제, 노동력 부족 등이 맞물려 인플레이션이 촉발됐다. 미국에서는 팬데믹 기간에 수요가 증가함에도 공급이 뒷받침되지 못해 인플레이션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이번 인플레에 대기업들의 탐욕이 있었을까. 그렇다고 주장하는 측의 논리는 이렇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식량과 에너지 가격이 인플레를 촉발하자 대기업들이 시장지배력을 악용해 상품 가격을 무분별하게 올렸다는 주장이다. 반대 진영은 그리드플레이션이 존재하지 않거나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과장됐다고 말한다.

이쯤에서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말을 소환해야겠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박애심이 아니라 자기애에 호소하며,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그들의 이익만을 그들에게 이야기할 뿐이다."

'기업의 탐욕'이란 사실 아름다운 것이다. 시장의 가격은 공정한 룰 안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적절한 가격이 이뤄진다는 게 스미스의 생각이었다. 바이든은 "엑손은 지난해 하느님보다 돈을 더 벌어들였다"고까지 했다. 조크였을까. 기업이 탐욕으로 인플레를 즐기고 있다면 반대로 큰 폭으로 하락하는 기업 주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지층을 겨냥한 과장어법으로 치부하기엔 세계 유일 초강국을 이끄는 바이든의 말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

김광태 디지털뉴스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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