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석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前노동부 차관
![[정병석 칼럼] 여전히 서점은 정보와 문화 창달의 중심](http://contents.dt.co.kr/images/202207/2022072602102269660001[1].jpg?var=2730 "[정병석 칼럼] 여전히 서점은 정보와 문화 창달의 중심")
이 서점에는 도시 중심가 한 블록을 차지하는 빌딩 3개층 매장에 100만권 이상의 책이 배치되어 있다. 서점 안에 분야별로 안내판 색깔을 달리해 책을 배열하고 각 서가에는 서점에서 엄선한 책에 그 추천 이유를 손으로 적은 메모지(staff's pick)가 빽빽히 붙어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메모지는 서점의 이름을 걸고 책을 추천한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보인다. 주요 작가를 직접 초청하거나 온라인으로 대담하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독자와의 접촉기회도 늘리며 문화센터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서점도 독서열의 쇠퇴, 온라인 주문 추세, 코로나 사태를 맞아 한때 인력의 90%를 감축하고 몇 달간 휴업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온라인 거래 확대 등 서점 스스로의 혁신노력과 코로나 진정세에 따라 상황이 호전되어 재개점하게 되자 작년 11월 뉴욕 타임즈는 장문의 기사를 내어 파웰 서점이 아마존 서점 열풍에도 불구하고 결국 생존했다고 축하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점은 학교 교재를 공급하기 위해 1897년에 개점한 '회동서관'이라 한다. 그 이전에 조선시대에는 서점이 없었다. 세계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 '직지심체요절'도 인쇄하고 활자인쇄술이 발달했던 조선에 어쩌다 서점 하나가 없었을까? 16세기 초 중종 임금은 책을 보급하기 위해 서점을 설치해달라는 상소에 대하여 어전회의에서 여러 차례 논의했다. 서적의 유통체계가 없어 책을 구하기 어렵고 책값도 너무 비싸다는 현실을 지적하며 개선방안을 강구하라고 임금이 지시했다. 그런데도 조정의 사대부, 심지어 삼정승까지 나서서 "우리나라 풍속에 없었던 서점을 개설하면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모른다"며 강력 반대해서 무산되고 말았다. 도대체 서점 개설이 사회에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한다고 그렇게 반대했을까.
조선 사신들이 북경에 가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유리창거리'라 불리는 서점 밀집가였다. 청나라 번영기에는 100여개가 넘는 서점과 문구류 가게가 밀집해 있었다는데 지금도 일부 보존되어 관광명소가 되어 있다. 조선 사신들은 서점에 들러 수많은 책을 살펴보고 대거 구입하며 선진 문화, 지식과 정보를 취득하는 창구로 활용했다. 그런데 자신들은 선진 문화를 접하여 견문을 넓히면서도 국내에 서점을 개설해 누구에게나 이용하게 하는 데에는 반대했다. 지식을 독점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조선 지배층에게 서점 개설은 양보할 사항이 아니었다.
조선 사신들이 귀한 책을 구입하더라도 청나라는 천문, 병법, 역법 등에 관한 책의 반출을 금지했고 국경인 산해관에서 엄격한 소지품 검사를 통과해 압류당하지 않은 책만을 가져올 수 있었다. 당시 서적의 유통은 지적자산, 문화의 유출로 국가 차원에서 규제되었다는 반증이다. 이렇게 제한된 분야에 걸쳐 어렵게 유입된 서적은 국내에서 아주 소량만 인쇄해 고위 관료에게만 배부하거나 필사해서 돌려볼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지식이 편향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무렵 서양에서는 인쇄혁명을 통해 급증한 다양한 서적으로 계몽주의, 과학혁명을 이뤄내고 산업혁명의 기반을 쌓고 있었다.
요새는 온라인을 통한 책 주문이 일반화되었다. 온라인 주문은 이미 알려진 책을 주문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서점에서와 같이 서가 사이를 순회하며 책을 자유롭게 꺼내 넘겨보고 지식의 흐름을 섭렵하는 재미를 주지는 못한다. 자신의 관심 영역을 넘어 다른 서가도 둘러 봐야 문화의 다양성, 창의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에는 2021년 기준 2528개의 서점이 운영 중이라고 한국서점편람에 기록돼있다. 도서관보다 더 역동적으로 변신하는 서점들이 다원적인 정보의 전달과 창의적인 문화의 산실로서 역할하기를 기대해본다. 책을 많이 읽는 분위기 확산에 못지 않게 시민들이 서점에 자주 찾아가 서점을 문화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관행도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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