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니가타 `조선인 노동자 학살`, 진상규명 없이 100년 흘러

입력 2022-08-03 18:21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니가타 `조선인 노동자 학살`, 진상규명 없이 100년 흘러

지옥실에 가두고, 갈고리로 찍고, 시신은 강에 유기

학대·학살 뿐 아니라 임금도 중간서 떼먹기 다반사
감언이설 속아 일본행, 인신매매와 별반 다를바 없어

1922년 무렵 일본 니가타(新瀉)현에서 발생한 이른바 '조선인 노동자 학살 사건'이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일본 신문에서도 "학살된 조선인의 시신이 강을 따라 자꾸 흘러 내려온다"는 기사가 실릴 정도로 참혹했던 사건이었다. 100년 전 기사를 통해 그 아픈 역사를 따라가 보자.

1922년 7월 29일자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에 수력발전소를 건설중인 시네츠(信越)전력주식회사 이야기가 실린다. "시네츠전력회사가 니카타현 나카쓰가와(中津川) 상류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할 때 조선인 노동자 600여명이 투입됐다. 그들이 매일 17시간의 고역(苦役)을 견디지 못해 도주를 시도하면 청부업자들이 권총으로 사살해 그 곳 나카쓰가와에 던져버려 하류에 조선인의 시체가 자주 떠내려 온다"는 것이 내용이다.

이 보도는 조선 사회에 큰 충격을 주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곧 '니가타현 조선인 학살 조사회'가 결성되었다. 허헌(許憲) 등 9명을 집행위원으로 선정했고, 모든 사안을 집행위원회에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며칠후 조사회 명칭에서 '학살'이라는 두 글자를 빼라는 경찰 지시가 내려왔다. 결국 명칭은 '니가타현 조선인 조사회'가 됐다.

조사단이 현지에 파견됐고. 언론사도 관련 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1922년 8월 초 편집국장 이상협(李相協)을 현지로 특파했다. 1년 후 간토(關東)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들이 대량 학살되자 이상협은 또 현지에 급파되어 기사를 쓰기도 했다.

다음은 이상협이 니가타 현지에서 보내온 기사들이다. "노동자가 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밤이면 지옥실(地獄室)이라고 하는 집에 가두고 문에는 자물쇠를 채우는 일이 있다. 만일 도망을 하고자 하면 모든 참혹한 형벌을 시키는 악습이 있으니, '니가니'(짐을 찍어 올릴 때 쓰는 낫 같은 도구)로 몸을 찍어 중상(重傷)을 시키고, 그 위에 염수(鹽水;소금물)를 부은 일이 있고, 또 발가벗긴 후 철판 위에 앉히고 그 위에 조약돌과 석회를 쌓아 놓고 물을 부어 그 석회와 조약돌이 서로 엉겨 붙는 바람에 몸이 모두 오그라들고 아프고 저려 기절한 일이 있다." (1922년 8월 20일자 동아일보)

"조선 사람 노동자가 이 지방에 들어가기는 금년 3월 이후로 매우 많아졌다는데, 7월 그믐에는 도합 867명이 되었는데, 그 중에 여자가 34명인바, 이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경상남도 사람이요, 경상북도와 전라도 사람이 약간 섞여 있고, 경기도 사람 약 60명이 있을 뿐이며...(중략)...경상남도 각 지방으로 돌아다니며 향촌(鄕村) 사람들을 감언이설(甘言利說)로 꼬여서 모집을 한 후에, 모집할 때에 하던 말과는 어림없이 틀리게 괴로운 노동과 무서운 학대를 강제하고...(중략)...공전(工錢) 중에 한 사람당 15전 내지 20전씩을 매일 떼어내어 모집해 온 자에게 주는 고로, 실상 내면을 보면 사기(詐欺)로써 인신을 매매하는 것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으며..." (1922년 8월 24일자 동아일보)

"중간에서 벗겨먹는 것만 없으면 그 돈의 전부가 노동자의 수중에 들어올 것이지마는, 세 층 네 층으로 내려오는 동안에 적지 아니한 돈이 없어져 노동자로 말하면 가위(可謂) 배를 주고 배 꼭지나 빌어먹는 셈에 지나지 못한다." (1922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

"걸음도 옮기기 어려운 자를, 다시 끌고 산 속으로 들어가서는 눈과 얼음 속에다가 두 발만 붙여서 엉거주춤하게 반쯤 앉은 후에,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서 무거운 철판을 들고 있으라 하여 기력이 다하여 할 수 없이 내려놓으면 몽둥이로 난장(亂杖)을 하여 또다시 들게 하고, 또 내려놓으면 또 때려서 밥도 먹이지 않고 이틀이나 이러한 악형을 하였다 한다." (1922년 8월 27일자 동아일보)

"노동자가 일터에 나가지 아니할 때에 먹고 자고 쉬는 곳을 반장(飯場)이라 하며, 반장의 별명이 '감옥실'이니 '지옥실'이니 하는 것인데, 우양간(牛養間;외양간) 같은 구조로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곳인데, 식당, 침실, 변소를 한 방에 모조리 겸하여 악취(惡臭)의 공진회(共進會) 같다." (1922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

"신명옥(申明玉), 권원룡(權元龍)이라는 두 사람은 난장(亂杖)을 맞고 그 위에 엉거주춤하게 한 후 무거운 철판을 고개 위로 높이 들고 있으라고 강제하여, 철판을 떨어뜨릴 때마다 몽둥이로 난장을 하여, 나중에 정신을 잃은 후에야 필경 그만 두었다는데...(중략)...신명익(申明益)이라는 사람은 오사카(大阪) 지방에 있는 형으로부터 온 편지 중에 '그 곳에서는 학대가 그리 심하다니 이리로 일을 하러 오면 어떠하겠느냐'는 사연이 있는 것을 발각당해 역시 양회(洋灰)의 얼음찜을 당하였다 한다." (1922년 8월 31일자 동아일보)

그 참혹했던 시간도 어느새 100년이 흘렀다. 그들은 원혼(寃魂)이 되어 지금도 그 장소에 내버려져 있다. 그 원혼들에게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 것인가. 100년 전 니가타의 지옥이 지금은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아직도 세상에는 불법 하도급, 계약과 다른 노동조건, 열악한 근로환경, 차별 등이 존재한다. 이런 현실이 너무도 한심하고 우려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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