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칼럼] 되돌아온 가스 중독의 악몽](http://contents.dt.co.kr/images/202211/2022111702102269073001[1].jpg?var=3250 "[이덕환 칼럼] 되돌아온 가스 중독의 악몽")
일산화탄소는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내는 무색·무미·무취·무자극의 기체다. 일산화탄소의 모양이 산소 분자를 꼭 빼닮은 것이 문제다. 일산화탄소가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에 산소보다 240배의 친화력으로 단단하게 달라붙어버린다. 세포의 산소 공급이 불가능해지면 두통·메스꺼움·구토·이명·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고농도의 산소로 곧바로 치료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어버릴 정도로 심각한 일이다.
일산화탄소 중독은 취사와 난방용 연료로 연탄을 사용하던 시절의 골칫거리였다. 연탄의 열기로 직접 구들장을 가열하는 재래식 온돌을 사용하면 누구나 상시적으로 '연탄가스'의 위험에 노출된다. 찢어진 장판 틈새로 연탄가스가 새들어오기 때문이다. 특유의 연탄가스 냄새는 일산화탄소가 아니라 연탄에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불순물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심지어 여름철에도 연탄가스를 걱정해야만 했다. 밥을 짓고, 국·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는 일에도 연탄을 썼기 때문이다.
일산화탄소 중독에 특별한 해독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증상이 가벼운 경우에는 동치미 국물 한 사발을 마시는 것이 고작이었다. 가까운 곳에서 '산소치료기'를 갖춘 병원을 찾지 못하면 문을 활짝 열어두고 요행을 기다려야만 했다.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매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연탄가스에 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연탄가스의 공포를 극복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재래식 온돌을 걷어내고 동(銅)파이프를 통해 뜨거운 물을 순환시키는 '새마을 보일러'가 등장한 덕분이다. 치명적인 일산화탄소의 위험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경제력과 기술력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전력 사정이 좋아지면서 굴뚝에 설치하는 '연탄가스 배출기'도 등장했다. 그러나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더라도 하루 서너 차례씩 연탄을 교체해야 하는 불편과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연탄보다 쉽게 연소되는 석유(등유)·LPG(액화석유가스)·LNG(액화천연가스)가 등장하면서 연탄가스 중독의 아픈 기억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일산화탄소 중독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탄소가 포함된 화석연료를 연소시키면 언제든지 일산화탄소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충분한 환기가 어려운 실내에서 장작·숯·연탄·석유·LPG·LNG·알코올과 같은 화석연료를 연소시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단열을 위해 밀폐에 신경을 쓰는 현대식 건물에서는 특히 그렇다.
밀폐된 실내 공기 중의 산소 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줄어들어서 탄소의 불완전 연소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연료의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가 실내에 누적되는 속도도 걱정해야 한다. 산소 부족에 의한 질식의 위험도 걱정해야 한다. 결국 실내에서는 화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공간이 좁은 텐트·자동차에서는 절대금물이다. 난방·취사에는 철·마그네슘·생석회(산화칼슘)가 물과 반응하면서 발생하는 열을 이용하는 발열팩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화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충분한 환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창문을 열어두거나 환풍기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방용 가스레인지, 소형 부탄가스 히터, 휴대용 버너도 예외일 수 없다. 가정용 가스보일러도 환기가 잘 되는 곳에 설치해야만 한다. 연통이 막히거나 연결 부위에 틈새가 생기지 않도록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일산화탄소 경보기는 크게 믿을 게 못 된다. 설치 위치에 따라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일산화탄소 중독은 최소한의 상식만으로도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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