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 논설실장
![[이규화 칼럼] `윤석열의 지배` 멋이 없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302/2023021302102269660001[1].jpg?var=3235 "[이규화 칼럼] `윤석열의 지배` 멋이 없다")
취임하자마자 대한민국 헌정사에 처음 선보인 최고 권력자의 원고 없는 즉석 일문일답(도어스테핑)은 그런 품성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현재는 중단됐지만 도어스테핑은 우리 정치사에 주목한 만한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대통령의 발언으로 혼란이 생긴다' '공직자들이 대통령 입만 바라본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의 솔직담백한 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정치나 통치가 왜 정제된 공문이나 발표문으로만 이뤄져야 하나. 국민이 귀를 기울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윤 대통령은 정치 초보였지만 일찌감치 대중을 이끄는 수를 알았다. 2013년 국정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수사하다 권력의 눈 밖에 나 좌천된 사실을 국회에서 증언하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해 강한 인상을 줬다. 이때부터 그의 정치역정은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정권이 바뀌고 그때의 강렬했던 이미지가 그를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의 발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토로한 적 있다.
자신의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선거에서 승리해 대권을 쥔 사례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윤 대통령 외엔 찾기 힘들다. 이 대단한 성공은 그의 자질과 운이 상승 작용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초반전이다. 본인이 출마하는 선거는 아니지만 윤 대통령에게는 일생일대의 성패를 가를 선거가 내년 22대 국회의원 선거다. 지금은 거야(巨野)에 발목 잡혀 윤 대통령이 하고 싶은 것을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선 때처럼 또 다른 어퍼컷이 나와 준다면 여당이 승리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다. 그런데 지금까지 주요 국정과제가 세팅된 게 거의 없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법안 276여건 중 219건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노동·연금·교육 개혁만큼은 꼭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할 당대표를 뽑는 국민의힘 경선에서 자신과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윤 대통령이 당헌 규정에 맞게 자신의 바람을 표현하는 것을 탓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최근 윤 대통령을 보면 어퍼컷이나 도어스테핑에서 보였던 여유와 파격을 찾아볼 수 없다. 나경원 전 의원을 굳이 '해임'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대선시절 국정의 동반자라고 함께 선언했던 안철수 의원을 '윤안연대'라는 말을 했다고 "국정운영의 적" "무례의 극치"라고 쏘아붙였다고 한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렇게 표변하는 윤 대통령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대체 누가 윤 대통령 곁에서 조언이나 자문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답은 윤 대통령 자신이라고 나온다. 윤 대통령은 자부심이 강하다. 아는 것도 많다. 조언과 자문을 받지만 보통의 지도자보다는 본인 생각의 관철률이 매우 높은 것 같다. 대선 출마 전인 2021년 3월부터 6월 말까지 3개월간 윤 대통령은 각계 전문가들을 많이 만났다. 그 때 만난 사람치고 현재 대통령실이나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국힘 경선에서 또다시 윤 대통령이 격한 발언으로 특정 후보를 '마타도어' 하면 윤 대통령의 언행에 매료됐던 지지자들은 등을 돌릴지 모른다. 컷오프에서 친윤이 밀었던 후보가 떨어지고 비윤 후보가 대거 통과한 당심(黨心)을 읽어야 한다. 부정확한 상황판단과 막연한 기대가 자신감과 합쳐지면 낙관적 편향에 빠질 수 있다. 한때 '윤석열의 정치' '윤석열의 지배'가 멋 있있다. 그게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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