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돈 없고 빽 없으면 학교도 못 가나"

입력 2023-03-15 18:41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100년 전 초등학교 정원 3000명에 1만명 지원

입학시험 치렀지만 교원과 친분있는 아동 선발
경성 대부분 외국인 소유… 남은 땅도 소수독점

심각한 빈부 격차로 극단적 선택하는 이도 늘어

'정순신 사태'는 단순히 재산의 빈부 격차를 넘어서 권력의 빈부 격차를 실감케하는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학폭 아들을 보호하려고 '법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국민들의 공분이 오죽 컸으면 '정순신 방지법'까지 추진되는 판국이다. 100년 전에는 어땠을까? 100년 전 '격차'의 모습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지금은 서울에서도 신입생이 없어 폐교되는 초등학교가 생겨난다지만, 100년 전에는 정반대였다. 새로운 교육에 대한 향학열이 점점 높아져 당시 보통학교(초등학교) 입학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1923년 3월 3일자 동아일보에는 "경성 시내의 입학할 학령 아동 수는 1만여명으로 작년의 7천명보다 3천명이 증가했는데, 16개 보통학교의 수용력은 불과 3천명이라 아동을 어디에다가 수용할 것인가"라는 기사가 보인다.

이렇게 경쟁이 심해지면서 선발 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부조리한 문제가 발생했다. 입학 부조리는 예나 지금이나 인지상정인가 보다.

'돈 없고 빽 없으면 학교도 못 가는 세상'이란 제목의 1922년 4월 3일자 매일신보 기사다. "이번에 경성 어의동(於義洞) 보통학교에서는 신학생 모집하는 선발 시험 중 당선자의 학력은 어떠하든지 그 아동의 가세(家勢) 유족(裕足)과 학교 교편을 잡은 자의 친척으로만 당선하고, 또는 학교 교원과 친분이 있는 자의 자질(子姪)만 당선된 모양이고, 학력이 능히 당선될 만한 아동이라도 가세(家勢) 빈한(貧寒)하고 아무 친분도 학교 측과 없는 아동은 모두 낙선된 모양이니, 전일(前日)과 달리 문명이 진보하는 이때에 이와 같이 공평치 못한 시험이 있을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선발시험은 불공평한 시험인 즉, 한 번 다시 시험을 보아서 빈부(貧富) 귀천(貴賤)간에 상당한 인격과 학력을 보아서 상당한 아동을 뽑음이 옳을 듯 할 것이다."

입학난은 경성 뿐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였다. 불합격자들의 불만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군민대회까지 개최되며 항의하는 일도 일어났다.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800여명의 군민들이 김해청년회 운동장에 모여 군민대회를 열어 세 가지 조건을 결의하고 군 당국과 입학 문제를 교섭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이에 총독부는 입학난 해소책을 구상하게 됐다. 바로 2부제 수업이었다.

소수의 토지 독점도 심각한 문제였다. 1923년 3월 5일자 동아일보에 '조선인의 조선은 이미 멸망하였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있다. "경성 시내의 땅덩어리는 반분 이상이 이미 남의 것이요 그 중에도 내용으로 전당을 잡힌 것까지 합하면 10의 7~8은 남의 것이 되었다 한다. '조선인의 서울'은 이미 멸망하였다! '남의 서울'은 점점 자라나는 중이나 조선인의 서울은 숨이 지려 한다. 서울이 이 꼴이고야 시골은 말해서 무엇하리요. '조선인의 조선'은 이미 멸망하였다."

경성 땅의 절반 이상이 남의 나라 사람 손에 들어 갔고, 그나마 조선인이 가진 땅도 거의 소수가 독점했던 것이다. 1923년 3월 10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국세(國稅) 1천원 이상의 조선의 부호(富豪) 조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조선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민씨(閔氏) 5명(민대식·민규식·민천식·민정식·민병석)이 소유한 땅이 무려 2181만평이다.

그 다음에 기타 13명이 소유한 땅이 3192만4000평에 이른다. 이준공, 이종익, 이종석, 윤덕영, 윤치소, 한규설, 김정석당, 조명구, 백인기, 전명기, 오정근, 한진달, 조병택이 보유한 토지다. 동양척식 주식회사가 264만300평을 가지고 있고, 숙명여교·양정의숙·진명여교 3개의 학교에서 소유한 땅이 700만평을 넘는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1923년 3월 7일자 동아일보에는 신의주 땅이 일본인 손으로 대거 넘어갔다는 기사가 나온다. "신의주는 조선의 관문(關門)이라 할만한 주요지임은 세상이 다 아는 바이어니와, 80만평이나 되는 신의주의 전체 면적 중 우리의 소유가 얼마나 되는가. 신의주 전체 면적 80만평 중 조선인 소유가 3만5000평, 중국인 소유 516평, 일본인 소유와 관유(官有)가 76만4484평으로 해마다 우리 조선인의 소유는 줄어드는데, 현재 우리의 손에 있다는 것은 아래와 같고 그 나머지는 부청(府廳)과 일본인의 소유라. 이와 같이 점점 없어져 버리면 시내에 10,700명의 조선 사람들은 장차 어디다가 집을 짓고 살까. 이러한 엄청난 땅의 소유 격차는 곧 그 땅에서 짜내는 일반 무산자의 피와 땀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들이 쌓은 부(富)는 곧 가난한 사람의 고혈(膏血)의 결정(結晶)이다."

1922년 8월 20일자 매일신보에는 빈부 격차를 비판하는 기사가 실려있다. "소위 유산계급들은 경치 좋고 바람 시원한 금강산이나 아방궁 같은 고루거각(高樓巨閣)에서 태평가를 부르지마는,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일반 시중(市中)의 노동자들은 말채찍을 메고 구루마를 끌 뿐 (중략) 벗어 놓고 보면 별로 다름이 없지마는, 무슨 일로 빈부와 귀천이 있는지? 귀신의 장난이라 할까?"

이같은 빈부 격차는 자살을 양산했다. 1923년 4월 5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요사이 자살이 많은데 원인은 생활 곤란과 신병(身病)이 많다 한다. 살자고 생겨난 세상에, 살 수가 없어서 죽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엄숙한 비극인가. 이러한 사실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실상을 말하는 것인가."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이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살자고 생겨난 세상에, 살 수가 없어 죽는 사람이 이제 더 이상 없어야 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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