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칼럼] 한·일을 움직인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http://contents.dt.co.kr/images/202303/2023032202102269061001[1].jpg?var=5216 "[박영서 칼럼] 한·일을 움직인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
미국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도쿄에서 12년 만에 정상회담을 했다"면서 "양국 관계에 새 장을 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도 "한국과 일본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라며 "동맹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떤 논의도 우리는 분명히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일 관계는 전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미국은 한일 관계 개선에 애를 썼다. 국무부는 한국과 일본의 손을 잡아 당겨 한미일 3자 회담을 수시로 열었다. 국무부만이 아니다. 국방부 역시 기회 있을 때마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주한미군까지 나설 정도였다.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해 6월 일본을 방문, 야마자키 고지 통합막료장(합참의장격)과 북한 문제를 논의하면서 "한국과 일본은 보다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은 두 가지 중요한 정책 과제를 위해선 한일 관계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다른 하나는 '통합 억제'(integrated deterrence)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 등에 의존하지 않는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동맹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급망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 반도체다. 그런데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불화폴리이미드)의 수출을 통제했다. 미국은 공급망 재구축에 방해 요인이 된다면서 일본을 압박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3개 품목의 대(對)한국 수출 통제를 해제했다.
'통합 억제'는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과 같은 동맹국의 힘을 모아 중국, 러시아,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다. 그동안 미국은 한일이 지소미아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통합억제력이 진전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만을 가져왔다.
가뜩이나 북한 비핵화 외교는 교착 상태인 판국이다. 대북 제재는 북한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북한은 보란듯이 핵탄두를 탑재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800m 상공에서 터트리는 기폭실험을 했다. 한일 정상회담 직전에는 화성-17형 ICBM도 발사했다.
만약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바이든의 북핵외교는 코너에 몰린다. 공화당은 맹공을 퍼부을 것이다. 내년 대선에도 영향을 준다. 따라서 한미일 삼각 공조 강화는 필요하다.
이를 보면 한일 정상회담은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기반한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 이 이번 정상회담을 실질적으로 추동한 것이다.
앞으로 '그 손'은 더 바쁘게 움직일 것 같다. 윤 대통령은 다음달 미국을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고, 이어 5월에는 기시다 총리의 초청으로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서 한미일 정상은 서로 손을 잡는 사진을 찍을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한국의 국익에 반드시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이 오로지 자국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백악관은 자국의 공급망 전략 때문에 한국 기업들이 피해보지 않게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까지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동맹이라 해도 국익이 같을 수는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우리 입장에선 잘못 됐다가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질 수 있다. 보다 실용주의적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해졌다. 단선적·직선적 접근은 금물이다. 무게중심의 추를 정교하게 이동시키면서 대한민국 생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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