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포럼] 한국의 연금개혁,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http://contents.dt.co.kr/images/202305/2023051702109969061001[1].jpg?var=1831 "[포럼] 한국의 연금개혁,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최근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 드라이브에 노조가 총파업 시위를 벌이며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연금개혁은 정치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경우도 5년마다 국민연금의 재정상황을 검토하지만, 5년마다 모든 정부들이 재정재계산의 결과에 따라 필요한 연금개혁 조치를 단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2003년 1차 재정재계산의 결과에 따라 2007년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인하한 노무현 정부와 달리, 이후의 정부들은 재정재계산만 하고 필요한 재정안정화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국민연금은 손대지 않았지만, 당장 수지 적자에 허덕이는 공무원연금과 사학연금 같은 특수직역연금의 재정안정화 개혁을 단행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특이한 사례이다. 국민연금이나 특수직역연금에 대한 어떠한 재정안정화 조치도 시도한 바 없고, 오히려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시도한 최초의 정권이다. 노조와 좌파 시민단체의 지지를 받는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대선공약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1월 "국민연금개혁안 국민 눈높이 맞지 않는다"며 국민연금의 보험료 인상이 포함된 제 4차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의 공식 개혁대안을 거부하였다. 대신 보건복지부가 4개의 복수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이중 2개안은 국민연금은 그대로 두고 (보험료율 9%에 소득대체율 40% 유지), 기초연금액을 30만원~40만원으로 인상하는 안이고, 나머지 2개안은 기초연금은 그대로 두고,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5%~50%로 인상하는 방안이다.
보험료율도 12%~13%로 인상하나, 재정안정화에 필요한 18%~20%에는 크게 미치는 못하는 안이다. 그러나 국회에 제출된 4개 개혁안은 제대로 논의도 못해 본 채 흐지부지 실종되고 말았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과 함께 노동, 교육, 그리고 연금을 3대 개혁과제로 선포하였다. 문재인 정부와 달리 '청년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을 천명하고 2022년 11월 국회에 연금개혁특별위원회와 행정부에는 제5차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정부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2023년 9월말까지 연금개혁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인구고령화와 연금개혁의 필요성
2025년, 대한민국의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총인구의 20%를 넘어서게 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것이다. 2000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지 한 세대도 안 되었는데,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이르는 것이다. 프랑스가 155년 걸린 일을 한국은 25년만에 달성하는 것이다. 평균수명의 증가와 함께 0.8을 밑도는 세계 최저의 저출산율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현재는 약 5명의 생산인구가 1명의 노인을 부양한다. 그러나 2060년에는 생산인구 1명 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하고 '잃어버린 20년'의 저성장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은 한국의 암울한 미래다. 일본의 경제성장은 멈추고, 조세수입은 늘지 못한다. 노인성 복지지출인 연금과 의료 지출은 계속 늘고 있다. 만성적인 재정적자로 국가채무는 GDP 대비 250%가 넘는다.
앞으로 40년 후가 되면 한국이 일본보다 더 심한 초고령 국가가 된다. 인구의 거의 반을 차지하게 될 노령인구에 대한 소득보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현재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재정구조는 부과방식(Pay-as-you-go, PAYG)으로 세대 간 소득 이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 생산인구가 납부하는 세금이나 보험료 수입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인 것이다.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고령인구는 늘어나는 인구고령화에 무척 취약한 구조다.
한국의 경우, 국민에게 약속한 소득대체율 40%의 국민연금 급여(생애평균소득이 300만원인 중간소득자의 경우는 120만원)를 모아둔 국민연금기금에서 일부 가져다 쓰면서 70년 동안 지급하자면, 당장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8%로 인상해야 한다. 기금에서 가져다 쓰는 돈 없이 순전히 보험료 수입으로만 연금을 지급하자면, 2060년에는 29.8%, 2080년에는 34.9%까지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소득의 30% 넘게 연금보험료 내고 나면 건강보험료는? 다른 세금은? 이게 가능할까? 바람직할까?
그런데, 미래 노인과 생산연령인구만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 한국의 노인들은 빈곤하다. 65세 이상 노인 중 중위소득의 50%를 밑도는 소득을 얻는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노인빈곤율이 한국은 40.1%나 된다. OECD에서 단연 1등이다. 노인빈곤율을 낮추자면 국민연금에 더 많은 사람을 가입시키고, 급여는 높여줘야 한다. 그러자면 지출은 더 늘어날 것이고 보험료 인상폭은 더 커져야 할 것이다. 딜레마다.
◆충돌하는 연금개혁 방안
현재 국회와 정부에서 가동중인 연금개혁위원회에서는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안'과 '보장성 강화안'이 충돌하고 있다. 인구고령화 상황에서 연금액을 올리자는 '보장성 강화안'은 사실 다른 OECD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주장이나, 앞서 지적한대로 현세대 노인의 빈곤율이 높다는 것이 연금액 인상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재정안정화안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현재의 40%로 고정한 후, 보험료율은 15%로 올려 수입을 늘리고, 연금수급개시연령은 65세에서 67세까지 2년 늦춰 지출을 줄이는 내용이다. 여기에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노령부양비(생산인구 100명당 노인 수)가 증가하면 자동으로 연금액을 삭감하는 자동안정화 장치의 삽입을 더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모두 가동하면, 2년치 연금지급액을 기금으로 쌓아 둬도, 최소한 향후 70년 동안은 국민연금 지급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국민연금재정안정화론자들은 노인빈곤 문제는 국민연금의 강화를 통해 해결할 생각은 말고, 기초연금의 하후상박(下厚上薄)식 개혁을 통해 해결하자는 입장이다. 즉, 현재 30만원씩 낮은 금액을 전체 노인의 70%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준보편주의 방식에서 벗어나, 약 40%에 달하는 빈곤선 이하 노인들에게만 기초연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이다. 기초연금액 또한 필요한 사람에게는 60만원까지 두툼하게 지급하고, 빈곤선에서 살짝 모자란 사람에게는 1만원이든 10만원이든 모자란 만큼만 지급하자는 안이다.
반면에 국민연금보장성 강화안은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까지 올리자는 안이다. 보험료는 약 15% 정도까지 올려 수입을 늘이고, 연금수급연령은 뒤로 늦춰 지출요인을 줄이자고 주장한다. 소득대체율 인상만 빼고 앞서 재정안정화 방안과 유사하다. 그러나 사실상 연금급여 삭감을 의미하는 자동안정화장치 도입에는 반대이다. 국민연금 급여가 인상되면 기초연금을 받아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노인들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단,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즉, 사각지대에 빠져) 연금인상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저소득 노인에게는 기초연금을 지급하자고 한다. 기초연금의 대상을 줄이자는 점은 재정안정화론자들과 맥을 같이 한다.
문제는 보험료율을 15%정도까지 밖에 올리지 않고 자동안정화 장치도 도입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소득대체율 50%에 해당하는 높은 연금을 지급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생애소득의 평균이 300만원인 중간소득자의 연금액을 12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올리자는 뜻인데, 현행 120만원도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어떻게 추가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국민연금보장성 강화론자들은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 투입을 주장한다. 보험료 수입만으로는 약속된 연금지급에 모자란데, 이 부분은 일반재정에서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나, 보험료나 세금이나 생산인구가 짊어져야할 비용이다. 보장성강화안은 국민연금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즉 후세대의 감당 불가능한 부담 문제를 도외시한 무모한 안이라고 평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재정안정화안은 어떤가? 보장성 강화안보다 현실적이고 미래세대의 부담 경감을 도모하는 안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영구적인 문제 해결책은 못된다. 70년에서 100년 정도 기금고갈 없이 버티자는 안에 불과하다. 그 이후는 어찌할 것인가?
◆보다 본질적인 구조적 개혁을 고민해야
서두에 지적했듯이, 앞으로 1명의 생산연령인구가 1명의 노인인구를 부양해야하는 인구구조에서는 부과방식(세대이전 방식)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지속 불가능한 제도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40%에서 30%로 낮추어 보험료 인상 부담을 대폭 낮추고, 기초연금은 빈곤노인에게만 한정해서 지급하는 선별주의로 바꿔야 한다. 이렇듯, 부과방식의 공적연금제도는 축소하고, 대신에 인구구조 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은 적립형 연금을 키워야 한다.
적립형 연금은 자신의 개인계좌에 자신이 은퇴 시 받을 연금을 근로할 때 차곡차곡 쌓아두는 방식이다. 다행히 한국에는 고용주가 법적으로 부담하고 있는 퇴직연금이 있다. 2021년 한해만 해도 약 49.9조원을 사용자가 퇴직연금 보험료로 납입을 해 주었다. 같은 해 국민연금 보험료 총수입 51조원에 버금가는 막대한 돈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중간정산해버리거나 퇴직 시 이를 일반 퇴직금처럼 일시금으로 수령한다. 연금으로 수급하는 경우는 금액기준 34.3%, 계좌 기준으로는 4.3%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간정산 요건을 강화하고, 근로자가 은퇴 시 퇴직연금을 일시금이 아닌 연금방식으로 수령하게 만들면, 소득대체율 20%짜리 연금이 새로 생기는 효과가 난. 축소된 국민연금만으로는 부족한 노후 연금액을 충분히 보완해 줄 수 있다.
'국민연금+퇴직연금'의 조합을 통해 추가적인 국가재정 부담없이 중산층의 노후소득보장을 이룰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국가의 재정 여력을 저소득 노인층에게 집중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 노인에게는 두툼한 기초연금(소위 기초보장연금)을 제공해서, 이들의 빈곤 탈출을 도와야 할 것이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
현재의 제도는 저소득 노인에 대한 기초 보장은 부족하고, 중산층 이상은 재정파탄이 예상되는 국민연금에만 의존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 막대한 비용만 들어가고 연금역할은 못하는 퇴직연금을 연금화하면, 국민연금, 퇴직연금, 기초보장연금의 3개 제도의 적절한 역할분담을 통해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소득원을 확보한다. 이것이 불가능한 저소득층은 빈틈이 없으면서도 재정효율적인 기초보장연금을 통해 빈곤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에만 매몰되지 말고, 퇴직연금까지 포함한 구조적인 연금개혁을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문제는 연금개혁은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보험료를 올리는 일, 퇴직금을 중간에 빼서 쓰지 못하게 하고 연금으로만 나눠서 오래 받게 만드는 일, 비교적 소득이 높은 노인들에게 주던 기초연금은 더 이상 주지 않는 것 모두 인기 없는 일들이다. 2007년에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개혁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끈질긴 개혁의지 때문이었다. 2003년에 개혁법안을 발의한 후 4년 동안 끊임없이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끌고 나갔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무원연금 개혁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무원노조의 반대에 맞서 뚝심있게 밀어부친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의 개혁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본 기고의 원문 출처는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193호'임을 밝히며, 원문의 저작권은 동아시아재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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