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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 롤러코스터, 왜 멈춰섰나…`불량전기` 시대의 경고

박양수 기자   yspark@
입력 2023-11-19 07:51

0.05초 사고에 T익스프레스 멈추고, 승강기 시민 갇혀
초정밀 반도체 공장 운영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긴장’
수도권 ‘전압강하’ 사고, 간선 변전소 개폐장치 고장 탓
전문가 “한전 재무 악화, 빈발한 송배전 사고 초래 우려


에버랜드 롤러코스터, 왜 멈춰섰나…`불량전기` 시대의 경고
멈춰선 '티 익스프레스'. [독자 제공=연합뉴스]

지난 14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의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가 갑자기 멈춰 서던 시각에 용인, 수원, 평택, 오산, 하남, 화성, 성남, 광주 등 경기도 여러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아파트와 상가의 엘리베이터가 순식간에 멈춰 시민들이 안에 갇히는 일이 잇따른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모든 일은 당시 평택에 있는 한 변전소의 설비 이상으로 눈 깜짝하는 순간보다 훨씬 짧은 단 0.05초 동안 전압이 급속히 낮아진 '전압 강하' 사고 때문에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전력망 운영을 책임지는 한국전력의 심각한 재정 위기로 인해 이번 경우처럼 광범위한 지역의 '불량 전기' 사고가 잦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9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지난 14일 경기도 곳곳에서 발생한 사고의 1차 원인은 평택시 고덕 변전소의 개폐기 절연체 파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해안 화력 발전소 등지에서 송전선을 타고 넘어오는 고압 전기를 받은 뒤, 전압을 낮춰 수도권 남부 지역에 공급하는 고덕 변전소의 개폐기 절연체가 원인 미상의 이유로 망가져 버렸다. 이에 자동으로 고장 복구 전까지 0.05초 동안 고덕 변전소를 거쳐 수도권에 공급되는 전기 전압이 급속히 낮아졌다.

일반 가정이나 상점 등에선 별다른 이상을 느낄 수 없는 순간적인 일이지만, 안전 운영 차원에서 순간적인 전압 강하를 민감하게 인지하는 장치가 달린 놀이기구나 건물 엘리베이터 등 설비가 동시다발적으로 정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사고는 엄밀히 말하자면 전압 강하로, 전기가 아주 끊어지는 정전과는 다른 개념으로 인식된다.

전력망은 점과 점을 선으로 연결하는 단선이 아니라 그물망 형태로 이뤄져 있다. 수도관에 구멍이 나면 일대 파이프의 수압이 낮아지는 것처럼 자연재해와 변전소 설비 이상 등으로 특정 지역 전력 공급이 끊어지면 일대에 국지적으로 전압이 낮아지는 전압 강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건 아주 드문 일도 아니다.

다만, 이번처럼 수도권 전력 공급의 관문이 되는 간선 격인 345kV 변전소의 설비 이상으로 수도권 거의 절반에 가까운 광범위한 지역에서 '불량 전기'가 공급돼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는 사고가 동시다발로 벌어진 일은 이례적이다.

아주 짧은 순간의 전압 강하일지라도 놀이기구나 엘리베이터를 멈춰 선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경제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반도체 공장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번 사고 때 평택과 이천 등지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은 일정한 전압을 유지하는 자체 장비를 갖추고 있어 생산 차질을 면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압 강하 사고를 인지하고 곧바로 한전 측에 사고 원인을 묻는 등 비상 대응에 나섰다고 한다.

초정밀 반도체 공장은 순간적인 정전이나 전압 불안에도 제품 불량이 생겨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 반도체 공장들이 외부에서 들어오는 전압과 주파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장치뿐 아니라 정전에 대비한 자체 발전 장비를 갖추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전 측은 아직 전기를 끊거나 넣어주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개폐기 고장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이번에 일어난 일은 정전과는 다른 것으로, 전압 강하에 해당한다"면서도 "전압 강하의 1차 원인이 된 개폐기 고장을 일으킨 원인을 계속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과 같은 '불량 전기'로 인한 사고가 앞으로도 잦아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전이 심각한 재정 위기를 맞고 있어, 대규모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 송배전망 관리에 영향을 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전은 심각한 재무 위기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송배전망 투자를 늦추고 있다. 한전은 지난 5월 25조원대 자구안 발표 시 일부 전력 시설의 건설 시기를 미뤄 2026년까지 1조3천억원 절감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계획을 두고 '자구'가 아니라 '자해'라는 비판도 나왔다.

한전의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에 따르면 2036년까지 전국의 송전선로는 현재의 1.6배로 늘어야 한다. 이에 따른 투자 비용은 56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한전은 전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부터 송배전망 보강 투자를 적게 했고, 요즘 들어 한전의 적자로 송배전망 투자에 재원 배분이 잘 되기 어려운 여건"이라며 "이번 사고는 향후 전기 품질 문제가 더 일어날 수 있다는 예고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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