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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화의 지리각각] 미국, 세계인을 웃기다 "알래스카 러에 안 돌려줄 것"

이규화 기자   david@
입력 2024-01-26 04:16

푸틴 법령 서명은 상징적 제스처일 뿐
정색하며 핏대올린 미국, 희롱거리 돼
정식계약 맺고 구입한 무오류의 거래
러시아는 역대급 손해, 미국은 돈방석
美 과민 반응이 세계인들 웃게 만들어


[이규화의 지리각각] 미국, 세계인을 웃기다 "알래스카 러에 안 돌려줄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세계 각지의 러시아 자산에 대한 관리를 강화한다는 법령에 서명한 것을 두고 미국 국무부가 정색을 하며, 러시아가 1867년 미국에 판 알래스카를 돌려받으려고 한다면 미국은 돌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나가도 너무 나간 반응이다. 푸틴의 발언에는 알래스카의 '알'자도 없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이 러시아자산을 압류하는 일이 벌어지자 푸틴 대통령이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겠다는 상징적 제스처를 한 것 뿐이다. 그런데 미국은 알래스카까지 끌어들여 과도한 액션을 취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과 유럽의 미디어들은 러시아와 미국이 알래스카를 두고 한판 붙는 거 아니냐며 풍자 식 보도로 미국을 놀리고 있다.


◇미국의 반응을 놀리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법률은 해외에서 러시아제국과 구소련의 재산을 찾는 데에 예산을 투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외에 유출돼 있는 역사적 문화재들을 조사하기 위해 자금을 배정하는데, 그와 유사하다. 그런데도 미국은 푸틴이 서명한 법령에 '러시아 자산을 찾는다'라는 문구에 골몰해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돌려받으려는 것 아니냐고 넘겨짚은 것이다.

이런 미국의 과민반응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러시아 국가안전보장회의 부의장 드미트리 메드베제프는 미 국무부를 희롱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러시아는 미국으로부터 알래스카 반환을 기대해 왔는데, 안 됐다"며 "전쟁을 해야겠네"라고 농담을 했다.

러시아 국가 두마(의회) 비아체슬라프 볼로지 의장은 한술 더 떴다. 알래스카는 한때 러시아 영토였으며 이제 그 반환을 생각할 때라고 했다. 물론 농담을 섞어 객기를 부려본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의 대가를 구실로 미국이 러시아 영역 밖 자산을 동결하려고 하니 볼로지 의장이 의도적으로 미국을 놀리려고 한 말이었다.

◇알래스카는 국제법적으로 완벽히 미국 땅

알래스카는 1867년 제정러시아가 미국에 720만 달러를 받고 정식 매매계약을 통해 판 땅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해를 건너 이 지역을 17세기부터 경략해왔다. 그러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관리도 어려워 통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특히 러시아제국의 재정상태가 안 좋았다. 크림 전쟁(1853~1856)에서 영국, 프랑스, 오스만 제국에 패배한 러시아는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됐다. 이로 인해 알래스카 매매 동기가 생겼다.

알렉산드르 2세는 알래스카를 팔기로 하고 비싼 값을 받기 위해 경쟁입찰에 부치기로 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원매자가 없자 영국에 매입 의사를 타진했다. 영국도 재정 상태가 안 좋았고 당시 식민지였던 캐나다를 통치하는 데도 골머리를 앓았다. 결국 러시아는 미국에 노크했다. 먼저 주미 러시아 대사 에두아르드 스토에켈이 미 국무장관 윌리엄 슈어드에게 매입의사를 타진했다. 미국은 캐나다를 공략 중인 영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은 알래스카를 확보함으로써 북미 대륙에서의 영국의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었다. 알래스카 매입은 영토확장에 열정적이었던 슈어드 장관의 의욕에다 대통령 제임스 뷰캐넌의 동의로 이뤄졌다. 당시 720만 달러를 그간의 연간 소비자물가지수(CPI) 증가율을 고려해 2020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1억3000만 달러다. 현재의 알래스카의 가치는 금액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다. 알래스카 거래는 세계 역사상 러시아에게는 가장 손해 보는 거래이자 미국에게는 가장 수지맞는 거래로 기록됐다.


이 거래는 국제법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 러시아가 이의를 제기할 근거는 눈곱만큼도 없다. 당시 거래로 미 국무장관 슈어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얼음덩어리를 거액을 들여 사들인 바보라고 비난받았고, 제정러시아는 횡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 평가는 오래지 않아 완전히 뒤집혔다. 알래스카에 금이 발견되고 이어 석유와 천연가스의 엄청난 부존량이 확인되면서다. 대게와 대구 등 해산물의 보고로 드러난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또한 지리적으로 알래스카는 대 러시아 최전방으로서 군사 전략적 요충지다.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도 경략했던 러시아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기 전까지만 해도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에 걸친 대제국이었다. 순수 개척 활동을 통해 3개 대륙에 걸쳐 영토를 확보했던 국가는 세계사에서 러시아가 유일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는 '러시안힐'이 있다. 러시아는 1700년대부터 알래스카를 기점으로 북미대륙 서해안을 따라 남하했다. 북미 서해안 지역에 처음으로 도착한 백인은 영국인도, 프랑스인도, 스페인인도 아닌 러시아인들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러시안힐은 당시 러시아인 선원들이 머무르면서 생긴 지명이다. 샌프란시스코 뿐 아니라 캐나다 벤쿠버에서도 18세기에 러시아 상인들이 드나들며 상거래를 활발히 했다.

그런가 하면 하와이도 러시아의 경략지였다. 1800년대 초반, 러시아 황실의 칙허 아래 일군의 상인들이 영국이 인도 식민건설에 활용했던 동인도회사를 모방해 퍼스트러시안컴퍼니(The Russian-American Company)를 창설했다. 이 회사는 알래스카와 북미 대륙 서쪽 지역에서 어업, 포획 및 무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점차 활동폭을 넓혀 1850년까지는 태평양 지역의 몇몇 섬들에도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와이도 그 중 하나였다.

1817년 퍼스트러시안컴퍼니는 하와이제도의 한 섬인 카우아이섬을 점령한 후 알렉산드르 1세에게 섬의 러시아 편입을 건의했다. 아울러 제국의 군대를 대규모로 파견해 하와이 제도 전체를 러시아 영토로 삼자고 청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르1세는 나폴레옹 전쟁의 뒤처리가 급한 나머지, 그리고 너무 멀리 떨어져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건의를 거절했다.

이후 19세기 중반 들어 미국의 영향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하와이는 미국의 영향 아래로 들어가게 됐다. 만약 알렉산드르1세가 당시 군대를 파견했다면 오늘날 하와이는 러시아 땅이 되었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폭격도 없었을 것이고, 태평양은 미국의 바다가 아닌 러시아의 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이번 알래스카 해프닝은 영토의 중요성을 새삼 환기한다. 현재 압도적으로 세계 최대 영토를 가진 러시아지만 알래스카를 미국에 팖으로써, 또 하와이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함으로써 더 큰 '영광'을 누릴 기회를 상실했다. 미국이 푸틴의 선언적 서명 하나를 갖고 정색을 한 것은 어쩌면 기회를 선점한 자만이 누리는 여유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미국은 세계인들에게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선사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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