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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학 칼럼] 농협중앙회장 `연임 과욕` 잔혹사

정구학 기자   cgh@
입력 2024-02-12 17:01

정구학 이사 겸 편집국장


얼마 전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된 강호동(61) 차기 회장. 씨름선수 출신 개그맨 강호동과 동명이인이어서 화제를 모았다. 연예인 강호동 만큼 덩치는 크지는 않지만, 그의 야망은 크다. 강 당선자는 37년간 시골 농협에서 일하면서 중앙에 진출, 농협을 개혁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이런 포부는 4년전 선거에서 3위로 탈락한 뒤, 이번에 재도전해 206만 농협조합원을 이끌 '농민 대통령'으로 뽑히는 밑거름이 됐다. 그가 조합장으로 일한 경남 합천의 면단위 조합인 율곡농협은 간신히 조합원 1000명을 넘긴 '강소(强小)농협'이다. 시골 조합장이 조합원수가 2000배나 큰 중앙회장으로 등극한다.
농협중앙회는 자산규모 145조원에 계열사만 32개다. 총자산 525조원의 농협금융지주까지 더하면 우리나라 한해 예산과 맞먹는 거대 자산을 굴린다. 민간기업과 견줘도 삼성그룹 자산규모(지난해 기준 414조원)를 능가한다. 공룡 농협중앙회를 3월부터 4년간 이끄는 회장의 파워는 막강하다. 계열사 대표 및 임직원 인사권과 예산권, 감사권을 쥐었다. 명목상 비상근 명예직이지만 농민신문 월급을 합쳐 연봉이 8억원이다.

이런 꿀보직이어서 역대 농협중앙회장 자리를 놓고 벌이는 다툼은 정치판 저리가라였다. 17년만에 다시 직선제로 치러진 이번 25대 농협중앙회장 선거도 농협 안팎에선 샅바 싸움이었다. 24대 이성희(75) 중앙회장이 '셀프 연임허용 법안'을 국회에서 막판까지 시도하면서 선거구도가 안개 속이었던 것. 관련법안은 결국 법사위에서 무산됐다. 이성희 현 회장과 측근들은 국회에 헛힘을 쓴 꼴이 됐다.

강호동 후보가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되는 데 기여한 1등 공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회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회장이 연임 도전에 막판까지 미련을 두는 바람에 이 회장과 가까운 모 후보가 선거운동을 뒤늦게 시작한 것. 해당 후보는 강 후보에 맞설 라이벌이었으나 시간상 역부족이었다.

이 회장의 무리수는 명예와 실리를 모두 잃는 패착을 낳았다. 만약 국회에서 '연임제 현직 소급' 조항을 뺀 나머지 개혁조항을 밀어붙였더라면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개혁안은 △도시농협의 농촌농협 사업비 지원 △지역농협 비상임조합장 연임 2회 제한 △중앙회 운영 투명화 등을 담고 있다.



이런 개혁을 외면하고 이 회장은 지역 농협조합장들을 '셀프 연임법안' 통과를 위한 국회 피케팅 들러리로 동원했다. 중앙회장 선거 전날엔 계열사 임원인사를 단행, '보은 인사' 까지 챙겼다. 농협의 개혁보다 일신영달을 앞세운 이 회장의 이름은 농협회장 잔혹사 명부에 추가될 것이다.
이제 개혁 과제는 강호동 당선자가 짊어졌다. 그는 중앙회보다는 지역농협, 도시보다는 농촌을 위한 개혁을 공약했다. 농축협을 위한 무이자자금 20조원을 조성, 조합당 200억~5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전국구 쇼핑센터인 하나로유통을 둔 경제지주를 중앙회로 통합하겠다고 한다.

이왕이면 지방 소멸이 이슈인 지금 '1사(社) 1촌(村) 운동'처럼 몇해전 문화일보와 농협이 손잡고 벌였던 기업제휴를 통한 농촌살리기 캠페인을 부활시키는 것도 괜찮다. 강 당선자가 "농촌소멸을 해결하기 위해 농업소득 증대가 해답"이라고 말한 것과도 맞아떨어진다.

그가 출근할 서울 중구 새문안로 농협중앙회 길가엔 광개토왕비 같은 기념비석이 서 있다. 윤봉길 의사가 일제시대 고향 예산에서 농촌계몽 운동을 할 때 썼던 농민독본의 글귀다. '농사는 천하의 대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을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윤 의사는 중국 상해로 독립운동을 떠나며 가족에게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유언을 남겼다. 강 당선자가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새겨야 할 좌우명이다. 씨름선수 강호동의 뒤집기 특기처럼 전임 회장이 미적거린 개혁과제를 새 회장이 뒤집기 한판으로 이뤄내길 기대한다. 이사 겸 편집국장

[정구학 칼럼] 농협중앙회장 `연임 과욕`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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