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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한류가 만드는 거대한 반전

   
입력 2024-02-13 18:37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한류가 만드는 거대한 반전
한국계 감독의 영화가 올해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로 지명됐다. 바로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라는 로맨틱코미디 영화다. 영화상의 핵심 부문인 작품상, 감독상에 지명돼 크리스토퍼 놀란, 마틴 스코세이지 등 거장들과 경쟁하게 됐다. 셀린 송 감독은 송능한 감독의 딸이다. 송능한 감독은 과거 한석규, 최민식 주연의 '넘버3'로 국내에서 유명했었다.


보통 로맨틱코미디는 작품성 있는 영화라기 보단 가벼운 상업물로 인식된다. 그런 작품으로 아카데미 핵심 부문의 후보로 지명된 것도 이례적인데 그 감독이 한국계이니 더욱 의미 있는 사건이다. 더 놀라운 것은 남주인공이 한국인 유태오라는 점이다. 로맨틱 영화의 남주인공은 그 사회에서 선망의 대상, 섹시한 남성의 상징이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이런 역할까지 맡을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번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티븐 연은 "미국에서 동양인 배우 역할은 '스테레오 타입'이 있다"고 말했다. 동양인 배우는 고정된 이미지의 역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남자 역할에 이런 경향이 강했다. 무술인, 신비한 사람, 웃기는 감초, 모범생 정도가 동양인 남배우의 정형화된 캐릭터였다.

우리가 흔히 좁은 의미의 동양이라고 부르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존재감이 약했는데, 그래도 그나마 중국이나 일본은 '동양의 신비'라는 이미지로 일부 서구인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반면에 한국은 그야말로 완전히 무존재감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서구인들이 아예 몰랐고, 아는 사람도 전쟁의 잿더미 정도로 인식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남성이 미국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싸이 때부터 반전이 일어났다. 많은 미국인들이 싸이에게 열광하며 한국을 재인식했다. 하지만 그때까진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였다. 그러다 상상도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다. 바로 젊은이들의 우상인 아이돌계에서 한국 보이그룹이 서구인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은 빅뱅부터 시작해서 방탄소년단에 이르러 정점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을 향한 미국 소녀들의 열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미국인들이 '브리티시 인베이전', 비틀즈가 떠오른다고까지 했다. 브리티시 인베이젼은 과거 비틀즈를 필두로 한 영국 밴드들이 잇따라 미국 시장에서 큰 사랑을 받은 문화적 대사건을 가리킨다.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그 정도로 역사적 사건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국 아이돌이 미국 음악 시상식을 주름 잡았고, 방탄소년단이 노래할 때 객석에선 서구인들이 한국어로 떼창했다. 그후 다른 케이팝 그룹들도 인기를 모으면서 음악계에선 상전벽해 수준으로 한국계의 부상이 이루어졌다.

영화 드라마 쪽에선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으로 한국 이미지의 대반전이 나타났다. '기생충' 때까지만 해도 작품은 인정하지만 한국인 배우에 대한 인정은 인색했다. '오징어게임'에서 마침내 미국 드라마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에미상에서 이정재가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한국인이 미국 대표급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는 쾌거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은 액션 스릴러 계통의 장르물이고, 로맨틱 멜로물의 남우주연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이 멜로 남자주인공이 동양계 남성으로선 가장 닿기 힘든 고지였다. 바로 그 역할을 한국인 유태오가 맡은 작품이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로 지명될 정도로 미국에서 인정받은 것이다. 유태오는 이 '패스트 라이브즈'로 오는 18일 열리는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로도 지명됐다. 그는 이와 관련해 "동아시아 배우로서 무협이나 코미디 같은 장르에 기대지 않고, 로맨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을 연기하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특별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스티븐 연의 말을 인용했는데, 이번 에미상에서 스티븐 연이 출연한 '성난 사람들'이 작품상, 감독상, 작가상, 남우주연상 등 8관왕에 올랐다. 이 작품은 한국계가 만든 한국계의 이야기인데 올 에미상의 주인공이라고 할 정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영화 드라마계에서도 한국 위상의 상전벽해가 나타난 것이다. 한국인은 그동안 서구에서 '무존재감의 타자' 정도 위상이었지만 한류가 거대한 반전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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