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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DT인] 유리천장 깬 물의 마법사 … "순수한 열정 하나로 30년 외길 걸었죠"

박한나 기자   park27@
입력 2024-04-01 11:24

문정미 한국이콜랩 부사장
1994년 공채로 입사… 여성 발전 지원 'E3' 韓 초대 리더 역임
"공장 인허가 취득에 큰 도움… 고객사들 만족할 때마다 뿌듯"


[오늘의 DT인] 유리천장 깬 물의 마법사 … "순수한 열정 하나로 30년 외길 걸었죠"
문정미 한국이콜랩 부사장이 1일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디지털타임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이콜랩 제공.

화학 공장에서 여성의 존재가 금기시되던 시절부터 화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30년 동안 근속하며 기업 임원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있다.


문정미(57·사진) 한국이콜랩 부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문 부사장은 한국이콜랩과 합병한 수처리기업 날코코리아에 1994년 공채로 입사할 때만 해도 유일한 여성 전문직 직원이었다.
수처리 기술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경험하면서 수처리의 매력에 빠졌고, 조직에 필요한 인재가 되도록 실력을 쌓아온 것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한 동력이 됐다.

1일 서울 송파구 한국이콜랩 본사에서 만난 문 부사장은 "요즘도 현장에서 '해봤어?'라는 질문이 빈번하게 나온다"며 "단순 지식이나 이론을 넘어 실제 장비들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것인데 여성으로 경험 부족을 극복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입사 초기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못할 거야'라는 사회적 편견을 머릿속에 담지 않으려는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다"며 "국내외 자료를 찾아 공부하는 건 물론이고, 성과를 하나씩 만들면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귀뜸했다.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가짐은 지난 30년동안 한국이콜랩에서 경력을 쌓아오면서 겪어온 여러 도전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0년대 국내 화학업계에는 여성 인력이 전무, 공장은 물론 사무실에서조차 여성 직원을 쉽게 찾아볼 수 없던 시절이었다. 문 부사장은 "기술 마케팅 직무로 뽑힌 만큼 현장에 반드시 가야 했는데 '여성이 공장에 방문하면 공장이 셧다운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며 여성 화장실조차 없었다"며 "자동차 공장에서 수처리 현장 실험을 하는데 화장실이 없어 참다 참다가 경비실 화장실을 사용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문 부사장은 현재 본사인 미국 이콜랩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경영 목표를 세워 추진하고 있다며,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콜랩은 2030년까지 경영진의 성별 다양성을 35%까지 높이고, 글로벌 목표와 가이드라인에 따라 국가별로 달성률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이콜랩 경영진의 성별 다양성은 27.2%이며, 한국은 13%까지 끌어 올렸다. 문 부사장은 "오랫동안 아시아태평양 지역 리더 미팅에서조차 유일한 여성이었는데 지금은 여성 리더들도 많다"며 "시간이 걸리지만 회사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적극 실행하는 의지를 보이면서 변화를 끌어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오늘의 DT인] 유리천장 깬 물의 마법사 … "순수한 열정 하나로 30년 외길 걸었죠"
문정미 한국이콜랩 부사장이 1일 서울 송파구 본사에서 디지털타임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이콜랩 제공.

문 부사장은 이콜랩이 DE&I와 관련해 여성의 발전을 지원하는 E3(Empower·Engage and Energize)의 한국 초대 리더를 역임했다. E3는 여성 리더십 함양이라는 글로벌 목표에 맞춰 회사의 성장에 기여할 여성 인재를 개발하기 위한 직원 리소스 그룹이다.


문 부사장은 "E3는 미국에서 주별로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커뮤니티인데 한국은 처음에 톱다운 방식으로 시작하다 보니 직원들이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먼저였다"며 "공감대 형성에만 3개월 이상이 걸렸지만 'E3 활동이 향후 궁극적으로 모두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선 후에 킥오프를 한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남성에 대한 역차별 우려도 제기돼 한국에 처음 E3를 신설할 때부터 남성 직원도 모두 회원으로 만드는 게 목표였다"며 "E3에 남성 직원도 가입과 활동, 단순 참여 모두 가능하게 한 것은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커뮤니티만이 진정한 의미의 공감대와 포용성을 담을 수 있다고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 결과 한국이콜랩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출산 전후 휴가와 육아휴직, 남성 직원의 배우자출산 휴가, 유산 휴가를 운영하고 있다. 또 주 평균 40%까지 원격·재택 근무가 가능하다. 유연 근무제, 시차 출퇴근제 시행은 물론 샌드위치 데이는 휴가를 적극 권장한다. 문 부사장은 "얼마 전에 영업직무에서 일하는 남자 직원도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고 복귀했다"며 "눈치 보지 않고 상황에 맞게 재택근무와 시차 출퇴근을 선택하는 워킹대디와 워킹맘들의 만족도는 실제 매우 높다"고 전했다.

문 부사장은 한국이콜랩에서 5년간 F&B(음식료)사업부에서 일하다 최근 LIGHT사업부에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다. LIGHT사업부는 대한민국의 기간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바이오, 데이터센터 등의 수처리를 담당하는 부서다. 특히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생산공정에서 초순수 공급은 필수적이다. 이콜랩은 자사 데이터 기반의 수처리솔루션과 디지털 기술로 초순수 솔루션을 제공한다. 또 기업이 수자원 사용량을 줄이거나 재이용하게 해 이윤을 창출하고 비용을 절감하게 돕는다.

문 부사장은 "LIGHT사업부는 반도체 사업이 부상하면서 초기보다 약 3배 규모가 커져 한국이콜랩 내 가장 규모가 큰 부서"라며 "한국 기업들이 반도체와 이차전지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으며 산업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부사장은 "이차전지 공장을 건설하는 초기 단계에 함께 들어가서 폐수에 중금속이 아예 나오지 않는 수준이 되도록 수처리 솔루션을 제공할 때가 기억에 남는다"며 "이콜랩의 솔루션으로 공장 인허가 취득에 성공한 사례가 상당수인데 고객사가 만족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고 꼽았다.

그는 한국이 미국 등 다른 나라보다 혁신적인 환경 기술이 개발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제한적인 자원과 좁은 지리적 환경 특성을 꼽았다. 국토가 넓은 미국 등에서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환경적인 요소도 한국에서는 반드시 처리해야만 공장을 운영할 수 있는데, 이는 산업단지 옆에 주거단지나 수자원 시설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에서 개발된 수처리 솔루션을 한국에 접목하던 데에서 벗어나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혁신 기술을 국내에서 개발하고 이를 미국이나 유럽 등에 소개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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