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열기 검색열기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침묵도 우리의 목소리", 도시의 치유를 생각하며

   
입력 2025-01-01 18:04

김은아 도시 스토리텔러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침묵도 우리의 목소리", 도시의 치유를 생각하며
헌법 제1조와 민주공화국 의미 되새기며


연대와 공감, 대한민국이 배워야 할 교훈
분노 넘어 포용으로, 2025년 도시 비전

분열이 아닌 하나된 '성숙 사회'를 꿈꾸며

2025년의 시작이 2024년 끝자락에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한 정치적 혼란과 무안공항 참사로 무겁게 다가옵니다. 광화문은 여전히 분노의 함성으로 가득하고, 도시 곳곳에서 시민들의 한숨은 깊어집니다. 대통령 탄핵과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다시 한번 도시의 의미를 되돌아봅니다.

그동안 우리는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촛불의 시대를 지나며 평화로운 시위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자부했습니다. 세계 언론들은 우리의 평화적 시위와 성숙한 민주주의를 앞 다투어 보도했지요. 물리적 폭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평화였을까요?

서로를 향한 불신과 증오, 극단적인 주장과 비난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광화문 광장에는 '살모사'와 '종간나'와 같은 단어들이 북소리에 맞춰 거리를 매웁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소리를 비트 삼아 흥겨운 몸짓을 하기도 합니다.

외신이 보았던 평화적 시위가 이것이었을까요? 우리는 폭력의 형태만 바꾸었을 뿐 '더할 수 없는 미움'을 차곡차곡 쌓아왔는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우리의 근간이었습니다. '국민을 위한 국가'인지, '국민을 도구로 사용하는 국가'인지,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노안'이 왔는지 국민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던 그들은 대참사 앞에 잠시 표정을 바꾸었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은 정 많고 모질지 못한 우리 국민의 발목을 붙잡는가 봅니다.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우리 국민을 그들은 너무 얕잡아보는 건 아닌지 싶습니다.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조선은 국민이 문제다.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한 나라지만, 조선은 국난이 일어날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가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까닭입니다.


탄핵 시위 속에 '선결제' 문화가 생겼고, 무안공항에도 '선결제' 문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문화는 서로를 신뢰하고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해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작은 행동이지만, 사람들 간의 연대와 공감을 보여줍니다. 거리에서 소리높여 '살모사', '종간나'를 외치는 대신 소리 없이 함께 아파하고 동참하는 '그 문제의 국민'이 있단 말이지요.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침묵도 우리의 목소리", 도시의 치유를 생각하며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올해는 그렇지 않으리라 장담하기가 어렵습니다. 폭력과 증오, 혐오를 부추기는 대신 '문제의 국민'인 우리는 더욱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우리의 사회를 어떻게 지켜갈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기 때문이지요.

2011년, 노르웨이 우퇴야 섬에서 발생한 테러는 '유럽의 반이슬람화'라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500여 명의 청소년에게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하며 77명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 주었고, 그 후, 노르웨이는 더 큰 성숙함을 보였습니다.

사건 후, 노르웨이 총리는 "우리의 대답은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개방성, 더 많은 인간성이 될 것"이라며, 분노 대신 대화를, 증오 대신 포용을 선택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시민들은 거리를 행진하는 대신, 추모의 장미를 들고 평화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노르웨이는 도시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도시의 품격이었고, 진정한 민주주의였습니다.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발생한 테러는 '백인 우월주의'와 '극단적인 증오'가 낳은 최악의 공격이었습니다. 51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을 입은 이 사건은 뉴질랜드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테러 후, 그들은 '침묵의 2분'이라는 추모 문화를 시작했습니다. 거리의 모든 발걸음이 멈추고, 도시의 소리가 잦아들었습니다. 차들은 자발적으로 멈추었고, 상점들은 잠시 문을 닫았으며,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묵념을 했습니다.

그 짧은 침묵은 수천 마디 말보다 더 큰 위로가 되었고, 도시를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이 되었습니다. 종교와 인종을 넘어서 모든 시민의 마음이 하나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침묵의 2분'은 단순한 추모의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도시, 하나의 사회가 어떻게 아픔을 함께 나누고 치유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무안공항에서 179명이 희생된 참사와 정치적 혼란이 가득한 광화문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어쩌면 잠시 멈추어 서서 깊은 침묵 속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침묵은 결코 패배나 체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깊이 생각하고, 진심으로 공감하며, 성숙하게 소통하는 방법입니다. 도시의 품격은 화려한 건물이나 세련된 거리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지금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정치적 혼란과 대형 참사로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새로운 도시의 모습이 필요한 때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외쳤습니다. 이제는 귀 기울일 때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싸웠습니다. 이제는 포용할 때입니다. 우리는 충분히 분열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가 될 때입니다.

새해 첫날,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모습입니다. 분노와 대립을 넘어, 이해와 포용이 흐르는 도시. 그 곳에서 우리는 진정한 치유와 성숙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경관이 만드는 아름다운 변화, 그것이 2025년 올해 우리가 그려나가야 할 도시의 새로운 모습일 것입니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