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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서가] 장석주가 안내하는 `사유의 오후`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25-01-01 18:04
[논설실의 서가] 장석주가 안내하는 `사유의 오후`



에밀 시오랑을 읽는 오후
장석주 지음 / 현암사 펴냄

"인생이란 태어난 자가 겪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암흑과 섬광이 뒤섞인 이 사건을 처음 겪으니 우리는 자주 시행착오나 실수를 저지른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우리 의지나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우연일 뿐이다. 태어남이 우연의 지배 아래에서 일어난다면 죽음은 필연의 일이다."



'날마다 읽고 쓰는' 장석주 시인의 인문 에세이다. '경이로운 날들', '침잠하는 날들', '기다리는 날들', '사랑하는 날들', '기도하는 날들', '귀 기울이는 날들' 등의 각 부제 하에 98편이 담겨 있다. 저자가 젊은 시절 마음을 빼앗겼던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 에밀 시오랑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해 독서, 산책, 음악, 바둑, 취향, 노동, 가족, 국가, 정치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다. 길을 걷고, 차를 마시고, 뉴스를 보고, 여행을 하고, 모든 일상의 순간에서 뻗어나가는 넓은 사유를 정제된 글로 한 자 한 자 눌러썼다. 긴 시간을 통과하며 행복했던 기억과 불행을 통과하던 시기, 그러나 이제는 시간이 지나 사랑하게 된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글을 쓰는 동안 지나간 팬데믹의 시기 역시 다양한 주제와 함께 풀어냈다. 저자는 고독이라는 주제로 팬데믹을 지나온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동시에 두려움이 가져오는 의심이라는 파국과 국가가 어떻게 사람들을 통제하는지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짚는다.

책에는 삶의 허무와 고통, 불안, 그리고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 펼쳐진다. 저자 특유의 시적이고 서정적 문체가 더해져 책의 제목처럼, 마치 오후의 햇살 아래 느긋하게 펼쳐지는 사색의 시간을 안겨준다. 책은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묻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삶과 철학, 그리고 독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좋은 동반자가 되는 책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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