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사진 속 이슈人] "약자 외면하는 정부 필요없다", 아르헨티나 대규모 시위

입력 2025-02-05 18:17

폭염주의보가 발동된 아르헨티나에서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지난달 다보스포럼에서 '워크'(Woke)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난하면서 "여성혐오 살인(Femicidio) 가중처벌은 차별이며, 동성애자는 소아성애 범죄자"라는 뉘앙스로 발언한 것을 규탄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밀레이 대통령은 인종·성정체성·문화의 다양성을 지지하는 일명 '깨어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워크'에 대해 "반드시 치료해야 할 전염병이자 반드시 제거해야 할 암 같은 존재"라고 비판했습니다. 또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동성애자 커플의 자녀 성 학대를 언급하면서 동성애자는 소아성애 범죄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성소수자 인권 옹호론자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며 증오를 유발하는 발언이라고 거세게 반발하면서 이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달 초부터 시위에 나섰습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논란이 일자 밀레이 대통령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으며, 대통령의 발언을 반정부 세력이 마음대로 해석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오히려 더 큰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성소수자 단체뿐만 아니라 여성단체·인권 단체·은퇴자단체·일반 시민단체·노조까지 가세하면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바뀐 것이죠.

이번 대규모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그들은 성소수자는 아니지만 "대통령의 발언과 정책에 참을 수가 없어서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25세 여성인 이아라는 "대통령은 여성 차별은 존재하지 않고, 여성이 더 낮은 급여를 받는다는 사실도 거짓말이라고 치부한다"면서 "여태까지 밀레이 정부의 경제정책을 힘들게 버텨왔지만, 소수 약자 차별 발언은 내 인내심의 한계를 건드렸다"며 시위 참여 이유를 밝혔습니다.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힌 리카르도(52)는 "밀레이 당선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면서 "이제는 밤거리를 걷는 것도 두렵다. 내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해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지낸다"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밀레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50%를 상회합니다. 밀레이 정부는 200%가 넘던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강력한 억제 정책으로 취임 1년 1개월 만에 117%로 거의 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지요. 16년 만에 재정흑자까지 기록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의 찬사까지 받았습니다.
이렇게 경제가 안정되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는 상황에서 이번에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자 아르헨티나 정부는 당황하고 있습니다. "야당이 주축이 된 정치적 시위"라며 의미를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밀레이 대통령의 이번 다보스포럼 발언은 성소수자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경제위기를 참고 버티던 일반시민들까지 '깨우는' 폭탄이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밀레이 정부의 긴축정책으로 최대 피해자가 된 고령의 은퇴자들이"연금을 올려달라"며 매일 시위하는 와중에 이들을 지지하거나 대규모 시위에 나서지 않은 시민들까지 폭염에도 불구하고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시위 참여자들은 "월급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으며, 이 정부는 부자만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현지 매체들은 이번 시위는 밀레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저항도 높다는 것을 증명한 시위라고 분석했습니다.
앞으로 밀레이 정부가 이러한 여론의 흐름을 어떻게 관리할지, 긴축정책을 계속 밀어붙일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만약 밀레이 대통령이 기존의 긴축정책 기조를 유지한다면 국민들의 불만이 더욱 거세져 시위가 더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보완책을 내놓는다면, 국민 지지를 일정 부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밀레이 정부가 경제 회복과 사회적 불안을 어떻게 균형있게 조율하느냐가 향후 정권 운영의 최대 과제가 될 전망입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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