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칼럼] 불량 요소수에 대한 비상 대처법](http://contents.dt.co.kr/images/202202/2022022402102269660002[1].jpg?var=4156 "[이덕환 칼럼] 불량 요소수에 대한 비상 대처법")
유로6 기준이 적용되는 경유차에 넣어주는 요소수는 맹물 1리터에 대략 325그램의 요소를 녹여서 만드는 매우 단순한 소모품이다. 그런데 요소를 물에 녹이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요소가 물에 녹으면 주위의 열을 흡수해서 차가워지기 때문이다. 상당한 시간 동안 열심히 저어주거나, 뜨겁게 가열해주는 공정이 꼭 필요하다.
그런 공정을 소홀히 하면 유통 과정에서도 녹지 않은 요소가 남아있는 불량 요소수가 만들어질 수 있다. 요소수를 지나치게 찬 곳에 방치해두는 경우에도 녹아있던 요소가 다시 침전될 수 있다. 온도가 내려가면 요소가 물에 녹을 수 있는 용해도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요소가 침전되어 있는 요소수를 무작정 불량품이라고 폐기해버릴 이유는 없다. 요소수를 잘 저어주거나 따뜻한 곳에 놓아두면 침전되었던 요소가 다시 녹는다.
날씨가 지나치게 추워지면 차량의 요소수 탱크에서도 흰색 요소가 침전될 수 있다. 요소수의 분사 노즐이 막혀버린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분사 노즐이 막혔다고 자동차의 운행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SCR의 성능이 떨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분사 노즐을 막아버린 요소는 날씨가 따뜻해지거나 요소수 탱크의 온도가 올라가면 저절로 다시 녹아버린다.
SCR의 제올라이트 담체가 흰색 침착물에 의해서 막혀버리는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엔진의 원활한 가동이 불가능해진다. 담체의 작은 구멍들이 모두 막혀버리면 경유차의 엔진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가 역류하기 때문이다. 배기가스가 배출되는 머플러(소음기)를 막아버리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제올라이트 담체에 흰색 침착물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산화규소로 만들어진 진흙의 일종인 제올라이트 담체가 부분적으로 파손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엔진이 정지되어 SCR이 충분히 식어버린 자동차의 요소수 분사 노즐에서 적은 양의 요소수가 지속적으로 누출되면 상황이 더욱 심각하게 악화될 수 있다. 누출된 요소수의 수분이 증발해버리면서 제올라이트 담체에 침착된 요소의 양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불량 요소수에 들어있는 불순물 때문에 담체의 구멍이 막힌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0.1% 수준에 지나지 않는 적은 양의 금속 원소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요소수가 담체에 침착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정품 요소수를 사용하더라도 SCR에 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SCR의 품질과 내구성을 의심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환경부의 품질 규격을 만족하지 못하는 불량 요소수를 굳이 사용할 이유는 없다. 불량 요소수의 불순물이 장기적으로는 질소산화물을 분해하는 SCR의 성능을 떨어뜨려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비료용 요소에 들어있는 황(S)은 SCR의 표면에 달라붙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금(염화나트륨)을 비롯한 광물질(미네랄)이 녹아있는 지하수로 제조한 불량 요소수도 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정품 요소수를 구할 수 없다고 반드시 자동차 운행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생수'가 훌륭한 비상 대책이 될 수 있다. 생수 제올라이트 담체나 요소수 노즐에 어떠한 고장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명백하다. 불량 요소수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가능하면 빨리 정품 요소수를 넣어주는 것이 원칙이다. SCR의 대기 오염 저감 성능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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