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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칼럼] 정부의 경제 개입, 민생만 어지럽힌다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22-09-29 18:17

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김영용 칼럼] 정부의 경제 개입, 민생만 어지럽힌다
대부분의 국가의 정부는 민생을 위한다는 이름 아래 경제에 깊숙이 개입한다. 정책의 의도와는 다른 정반대의 결과를 누누이 경험하지만, 그럴수록 선의와 포퓰리즘, 그리고 무지가 뒤얽힌 개입의 강도를 높인다. 몇 가지를 짚어보자.


대표적인 것이,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미국발(發)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미국은 자가(自家) 보유 비율을 높이기 위해 2000년부터 저금리 정책으로 장기간 돈을 풀어 2008년에 금융위기를 맞았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후에도 계속 돈을 풀었다. 세계 경제 규모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주요 각국도 돈을 풀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또 다시 엄청난 양의 돈을 풀었다. 한국도 그랬다.
그런데 장기간 많은 돈이 풀리면 소비자들이 원하는 물건을 적시에 공급할 수 있는 생산구조가 망가진다. 기업가들이 풀린 돈을 사람들의 저축 증가로 착각하여 잘못된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찾아오는 불황은 경제가 고장났다는 신호이자, 망가진 생산구조가 시장 조정을 통해 정비되는 기간이다.

물론 시장 조정을 방해하는 행위(돈을 풀고, 물가와 임금 하락을 억제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행위 등)가 없어야 경제가 회복된다. 따라서 돈 풀기를 중단하고 거둬들이기 위한 금리 인상은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는 정부가 돈을 대거 풀었다 조였다 하면서 민생을 멍들게 한다는 것이다. 선의와 무지의 산물이다.

눈을 안으로 돌려 전 문재인 정권을 살펴보자. 소득은 생산 활동으로 얻어지는 최종 결과물인데, 결과를 원인으로 바꿔 소득을 높이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은 무지의 극치다. 분양가 상한제, 재산세 중과, 임대차 3법, 재건축에 따른 초과이윤(?) 몰수 등의 부동산 정책은 주택 공급을 줄여 주택 가격과 전월세 가격을 모두 올렸다.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로 풀린 돈이 대거 주택 시장으로 몰리면서 가격은 더욱 올랐다. 선의인지, 선의로 포장된 악의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의도와 무지의 산물이다.



현 정부·여당과 야당의 정책도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부품 가격은 그 제작비용이 어떠하든 소비자들의 지불 의사를 나타내는 최종 생산물의 가격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납품단가 연동제는 이런 원리를 거스르고 제작비용에 따라 부품 가격을 책정하라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 등이 올랐을 때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시장의 조정을 가로막는 것이다. 무지의 산물이다.
공공임대 주택의 끝이 슬럼이라는 사실은 이론과 실증을 통해 여실히 확인된 것이다. 주인 없는 주택에 보조하는 국비의 효과적 사용을 기대할 수 없고 저소득층의 주거 안정 명분으로 임대료는 낮게 책정될 것이므로 유지·보수가 잘 되지 않는다. 공공주택의 주거 서비스의 품질이 낮은 이유다. 선의와 무지의 산물이다.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양곡관리법은 과잉 생산된 쌀을 시장에서 격리함으로써 쌀 가격을 지지(支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쌀 수요는 줄어드는데 쌀 가격을 지지하면 쌀은 계속 초과 공급된다. 사람들의 식생활 변화에 맞춰 변해야 하는 구조조정이 지연돼 농업은 낙후 산업이 된다. 정부 재정에도 부담이 된다. 농민들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의 산물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 개정법률안(이른바 노란봉투법)은 근로자, 사용자, 노동쟁의의 정의 규정을 수정하고, 손해배상 청구 제한을 확대하며, 개인 등에 대한 불합리한 손해 배상을 제한함으로써 '노동 3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발의됐다. 세계적으로 퇴조하고 있는 노조 활동을 부추겨 불법 활동과 무책임을 조장하고 기업의 사유재산 약탈을 방조하는 법률이다. 그릇된 이념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민생을 위한다는 정부의 경제 개입은 흔히 선의로 포장되지만, 포퓰리즘과 무지, 때로는 그릇된 이념이 더해져 민생을 어지럽힌다. 이제 이렇게 넌더리나는 정치를 이 땅에서 축출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지적으로 깨어나야 한다. 그래야 권력다툼에 불과한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관(觀)을 가진 '자유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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