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열기 검색열기

[안경애 칼럼] `1호 영업사원`의 다음 미션

안경애 기자   naturean@
입력 2023-04-30 17:56

안경애 ICT과학부장


[안경애 칼럼] `1호 영업사원`의 다음 미션
4월 1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 샌프란시스코와 주변도시 지하철을 운영하는 기관(BART)의 이사회가 열렸다. 안건은 610억원 짜리 지하철 요금결제 게이트 구축기업 선정결과 승인. 보통은 입찰 결과가 의례적 승인을 거쳐 바로 확정되지만 이 사업에선 달랐다. 처음 들어보는 한국 기업이 미국 기업 두곳을 큰 점수차로 이기자 이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에스트래픽은 총점 93.21점을 받았다. 2등 기업과 10점 차가 났다. 3등과는 15점 넘게 벌어졌다. 가격점수 차이는 1점이 채 안 됐는데 기술에서 벌인 차이다.제안요청서에 담긴 요구사항 하나하나에 페이지를 표시해 가며 해법을 제시한 에스트래픽의 제안서와 발표를 본 평가위원들은 국적을 따지지 않고 점수를 매겼다. 3등 회사가 가격을 낮게 써내 만회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역경제와 일자리를 무시하기 힘든 BART 이사회는 결정을 주저했다. 3주 간격으로 이사회를 두 번 연 이유다. 이사회가 흔들리는 가운데 BART 실무진과, 앞서 에스트래픽에 일을 맡겼던 워싱턴DC 지하철공사 고위 관계자가 측면 지원에 나섰다.

두 번째 열린 이날 이사회에서 미국 기업들은 일자리 문제를 파고들었다. 수백명의 지역민이 준비 중인데 입찰에서 지면 그들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 본사업에 앞서 하는 파일럿 사업에 대가를 안 받고 참여할테니 그 결과를 가지고 최종 사업자를 정하자는 제안까지 내놨다. 이변은 없었다. 이사들은 만장일치로 원래의 평가 결과를 확정했다.

하정우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2017년 벤처의 본고장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에 도전해 세계 1등 서빙로봇 회사로 키워냈다. 구글에서 일하던 하 대표가 서빙로봇 상용화에 도전한 것은 부업으로 시작한 순두부 가게에서 사람 쓰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낮에는 구글 직원, 밤에는 순두부가게 사장으로 일하며 서빙로봇을 개발해 자신의 식당에서 테스트한 끝에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가장 앞서간 탓에 시장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와 도움을 받아 일본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일본은 이 회사 서빙로봇을 가장 많이 써주는 시장이 됐다. 미국에서도 1위다.


한국을 먹여살려 온 수출이 처참하다. 믿을 것은 기업이다. 실력과 패기로 뭉친 기업들은 경기침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사이다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세계 최초에 도전하고 세계 최대 시장에서 배짱 있게 승부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초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 신발이 닳도록 뛰고 또 뛰겠다"고 했다.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라고 했다. 이번 방미 기간에 미국 기업들로부터 8조원 가까운 투자 약속을 이끌어냈다. 이제 방미 성과가 시장에서 나타나도록 기업들이 신나서 뛰게 해줘야 한다. 우리는 다행히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부터 딥테크, 바이오, 콘텐츠까지 탄탄한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여기에 적절한 정부 지원이 보태지고 정치 리스크가 덜어지면 금상첨화다.

산업계는 세수 급감으로 정부의 기업·인재 지원예산이 위축될까 걱정이 많다. 스타트업 성장 마중물인 정부 모태펀드 출자가 마를 수 있다는 위기감도 크다. 특정 산업에 대한 쏠림 지원도 우려한다. 선심성 SOC 사업을 남발하면서 미래 인재와 스타트업 육성, 기업 R&D 지원을 줄인다면 표를 위해 미래를 포기하는 꼴이다. 수만명을 먹여살릴 스타 기업과 인재에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 초격차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한 '딥테크 팁스', 소프트웨어 명장을 기르는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 같은 최상위 그룹 지원을 늘려야 한다. 혁신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지난 1분기 미국 빅테크 실적만 봐도 알 수 있다.

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정치권의 기업 때리기는 반대표만 늘릴 것이다. 기업에 대한 정권의 분위기가 감지되면 정부부처들도 귀신같이 표정을 바꾼다. 공정위나 금융위를 접한 기업들은 서슬에 기가 눌린다. 통신사나 플랫폼 업계도 정부 눈치 보기 바쁘다. 미국은 치사할 정도로 자국 기업 챙기기에 바쁜데 우리나라는 경제전쟁 시대에 내전을 벌이는 꼴이다. 안에서 혼나기 바쁜 기업들이 어떻게 글로벌에서 자신 있게 뛰겠는가. 대통령이 영업전선에서 뛰어도 팀이 뒤따르지 않으면 꽝이다. 기업을 구박덩어리로 만들게 아니라 글로벌 무대에서 춤추게 해야 한다. ICT과학부장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