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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칼럼] 지금이 `핵없는 세상` 만들 때다

박영서 기자   pys@
입력 2023-05-21 18:13

박영서 논설위원


[박영서 칼럼] 지금이 `핵없는 세상` 만들 때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시작됐다. 19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히로시마시 평화기념공원에서 G7 정상들을 영접했다. 이후 정상들과 함께 공원내 원폭자료관을 방문했다.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3개국을 포함한 G7 정상이 함께 자료관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G7 정상들은 자료관 내에서 피폭자인 오구라 게이코(85) 씨를 만났다. 자료관 내 방문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G7 정상들은 자료관 시찰 뒤 굳은 표정으로 나와 평화기념공원 내에 있는 위령비까지 걸어갔다. 이들은 일렬로 서서헌화한 뒤 묵념했다. 이들은 '핵군축을 위한 히로시마 비전'을 채택했다. 핵무기로 인류를 위협하는 국가로는 러시아, 중국, 북한을 지목했다.
기시다 총리는 자신의 고향이자 지역구인 히로시마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이란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기시다 총리는 G7 정상들의 자료관 참방을 강력하게 요청했었다. "원폭의 참상을 직접 봐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하지만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은 '최후의 피해자'가 됐지만 남의 땅에서 침략전쟁을 벌여 100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가해자가 일본이다. 그런 일본이 '피해자' 행세를 하는 건 어딘가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히로시마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이다. 1945년 8월 6일 월요일 아침 히로시마 상공 570m에서 터진 한 발의 폭탄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순식간에 날려보냈다. 히로시마 인구의 40%에 달하는 14만명이 사망했다. 대부분 민간인들이었다.

그 중에는 조선인들도 많았다. 조선인 피폭자는 약 5만명, 피폭으로 사망에 이른 사람은 약 3만명으로 추정된다. 제주 4·3사건 전체 희생자 수에 버금가는 규모다. 나가사키 원폭 사망자 2만명까지 합하면 총 7만명의 조선인들이 불지옥 속에서 세상을 떴다. 세계에서 일본 다음으로 원폭 피해자가 많은 나라가 우리인 것이다.

원폭 투하와 함께 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하지만 인류는 그 위력에 압도됐다. 핵무기는 종전 후 세계 제패의 중요 변수가 됐다. 핵 경쟁이 시작됐다. 미·소 냉전 종식 당시 전 세계 핵탄두 수는 10만개를 넘은 상태였다. 이후 미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핵 군축이 진행됐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핵 상황을 크게 바꿔 놓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냉전 종식 이후 감소해 왔던 세계의 핵무기 수가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핵이 없는 국가들조차 점점 더 핵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외신들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 포르도 핵시설에서 핵무기급에 가까운 순도 84% 농축 우라늄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핵 보유가 목전에 있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에게 우라늄 농축 기술 등 민간 핵 계획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은 핵 보유국가를 자처하고 있다.
핵은 오래 전에 사용됐다가 지금은 쓰이지 않는 무기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배치되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는 1만2000개 이상의 핵탄두가 있다. 이런 핵전력은 핵전쟁 리스크를 늘릴 수 밖에 없다. 78년 전 히로시마에서 일어났던 일이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핵군축 흐름이 완전히 역류하고, 핵 긴장이 점점 고조되는 상황에서 G7 정상회의가 열렸다. 핵군축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지만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불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핵 사용 포기'를 선언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핵군축과 비확산에 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된다면 '핵없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딜수 있다.

G7 정상들의 역사적인 원폭자료관 참관이 '정치적 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G7 정상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해진다. 무엇인가 느꼈다면 그것을 실천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핵전쟁에서 승자란 있을 수 없다. 바로 '당신 자신'이 피폭자가 될 수 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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