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열기 검색열기

"더이상 못 미뤄"… 절박함에 나온 고육지책

이준기 기자   bongchu@
입력 2023-09-18 19:45

임시저장소 2030년 포화 시점
늦어지면 일부 원전 멈출 수도


정부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후보지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수년째 지지부진한 관련 준비작업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R&D 로드맵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2060년까지 37년간 R&D에 총 1조400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 로드맵을 이행하려면 고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 이전에 필요한 자료조사, 처분시스템 성능 연구 및 기술개발 등을 위한 연구용 지하연구시설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하지만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에서 한발도 진전되지 못하면서 시간만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지하연구시설 사업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지하 500m 깊이에서 심층 처분 기술 등을 실증하고 안전성을 확인하려면 2031년에는 지하연구시설 건설을 끝내 운영을 시작해야 하는데, 부지 선정과 기본설계, 실시설계, 인허가 등의 절차를 밟으려면 내년에는 최종 후보지를 확정해야 한다.

지하연구시설에서는 처분장 부지 선정과 안전한 고준위 폐기물 관리를 위한 다양한 연구들이 이뤄지게 된다. 가령, 처분장 구축부터 폐기물 밀봉·회수 기술, 다중방벽 안전성 입증, 천연방벽 변화 규명 등의 연구를 통해 확보한 실증 데이터와 분석 자료들이 방폐장 후보지 선정과 건설, 인허가 등에 쓰이게 된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대국민 수용성과 신뢰 확보에도 지하연구시설이 활용된다.

여기에 원전 계속운전이 늘면서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포화 예상 시기가 앞당겨진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각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포화 예상 시점이 1∼2년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2031년 한울 원전, 2032년 고리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포화 상태를 맞는다. 이때까지 고준위 방폐장이 마련되지 않으면 원전이 멈춰서야 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스웨덴, 프랑스, 스위스 등 고준위 폐기물 처분기술 선도국들은 이미 1970∼1990년대부터 고준위 방폐장과 유사한 환경의 지하연구시설을 확보해 심층 처분 관련 연구를 해 오고 있다"며 "지하연구시설을 운영하면서 쌓이는 실증 데이터와 자료 등은 고준위 방폐장 후보지 선정과 안전한 관리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 2025년 세계 최초로 고준위 방폐장 운영을 시작하는 핀란드는 1983년 방폐장 부지 선정에 착수해 18년 후인 2001년 부지를 확정했다. 이후 2016년 건설에 착수해 현재 마무리 단계다. 그 과정에서 고준위 폐기물 운반·저장, 부지평가, 처분 등 관련 기술을 지하연구시설에서 실증하고 완성도를 높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부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2060년부터 고준위 방폐장을 운영하는 게 목표지만,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이 여야 간 이견으로 입법화가 계속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원전이 위치한 5개 기초 시·군 단체장과 한국원자력학회 등 전문가 단체들은 특별법의 신속한 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특별법이 통과되고 곧바로 부지 선정에 착수해도 중간 저장시설 마련까지 20년이 걸릴 전망"이라며 "이렇게 되면 일부 원전이 멈춰서는 상황도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기·정석준기자 bongchu@dt.co.kr

"더이상 못 미뤄"… 절박함에 나온 고육지책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지하 120m에 건설된 연구용 지하연구시설과 유사한'지하처분연구시설(KURT)' 모습

원자력연 제공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