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열기 검색열기

[현장칼럼] 휘청대는 `디지털플랫폼정부`

팽동현 기자   dhp@
입력 2023-11-20 16:09
팽동현 ICT과학부 기자


[현장칼럼] 휘청대는 `디지털플랫폼정부`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영화 '8마일'에서 에미넴이 맡은 주인공의 대사를 의역한 게 인터넷 '짤방'으로 퍼져 인기를 얻은 말이다. IT강국이라 자부하곤 있지만 잊을만하면 민낯이 드러나는 국내 공공IT분야 상황에도 제법 어울린다.
지난 17일 행정전산망 마비로 '정부24' 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 빚어졌던 초유의 '민원 대란'은 56시간 만에 가까스로 정상화됐다. 주말 내로 시스템 복구 작업이 완료된 게 불행 중 다행이다. 20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해당 문제를 일으켰던 '시도·새올(시군구) 행정정보시스템'은 정상 가동 중이며, 장애 재발 등에 대응하기 위한 상황실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늦어도 수 시간 내로는 이뤄져야하는 국가 전산망의 장애 복구가 지연된 것에 대한 책임을 벗어나긴 어렵겠다. 그새 중복 처리된 민원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등 뒤처리 문제도 남았다. 약 한 해 전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 메신저 서비스가 장시간 멈췄을 때 정부가 보였던 날선 반응과 이후 플랫폼사업자들에 부과한 안정성 의무도 고려하면, 이번 사태를 행정편의적으로 유야무야할 경우 비난과 후폭풍은 꽤나 거셀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행안부가 밝힌 장애 원인에 대해 갸웃거리며 재발을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전날 행안부는 새올 행정시스템에서 GPKI(정부공개키인프라) 전자서명 인증 관련 장애가 발생해 해당 서버 등을 점검한 결과 L4스위치의 이상을 파악하고 이를 교체하면서 문제를 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네트워크 장비는 주로 트래픽 부하 분산(로드 밸런싱) 역할을 하며, 장애 발생 전날 저녁 패치 작업이 이뤄진 것 때문에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IT업계에 따르면 이 장비가 위치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옛 정부통합전산센터)에서는 당일 저녁에 이뿐 아니라 유지관리를 위한 다양한 작업이 진행됐으며, 통합 관리 주체가 없어 각 영역 유지보수 담당 기업 간 정보공유나 협업이 원활치 않았다. 또 해당 장비의 패치를 이내 원복하거나 교체했음에도 장애는 한참 더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IT거버넌스가 미흡해 원인 규명이 늦어지면서 여론이 악화되자 급한 대로 행정편의적인 내용을 내놨을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돌이켜보면 IT업계, 특히 SI(시스템통합)사업을 수행하는 IT서비스 기업들은 공공부문의 행정편의적인 결정과 행보에 시름해왔다. 공공 SW(소프트웨어) 사업 예산은 기획재정부 등을 거치며 반절 가까이 깎이기 일쑤지만, 외려 과업 범위는 수행 과정에서 더 늘기만 하는 게 대표적인 고질병이다. 수천억원대 사업이라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후려치기 당한 게 다반사다.


이번 사태에 해당하는 유지보수 사업 또한 보통 사업자의 장부상 수익률은 3% 수준으로, 업체들은 레퍼런스 확보 차원에서 손해만 안 보면 다행이라 받아들인다. 하물며 그 대상이 십수년째 쓰면서 노후화됐음에도 차세대사업이 차일피일 밀리던 시스템이라면 결과는 뻔했다.

최근 들어 정부 공공시스템 장애나 대형 공공SW 사업의 난항이 잇따르는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AI(인공지능)를 비롯해 SW는 21세기 핵심 역량으로 자리잡았고, 국내에서도 개발자 등 전문인재들의 몸값은 3D업종이라 불리던 10여년 전과 급이 달라졌다.

하지만 공공분야 IT투자는 그간 별반 나아진 게 없고 여전히 행정편의적으로 이뤄진다. 근본적인 시스템SW 역량 제고보다 모바일 앱 등 창업 숫자에 더 눈길을 준다. 인재 유출과 투자 위축이 악순환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역량 부족만 탓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런 사고가 날 때만 반짝 관심을 가질 게 아니고 근본적인 개선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툭하면 지적받는 사이버보안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또한 안전불감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공공의 IT역량이 높아질 필요가 있다. 순환근무 등에 따른 담당자들의 전문성 부족은 오랫동안 지적돼온 문제지만, 이들도 원해서 그럴 리는 만무하다. 이들이 행정편의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벗어나 성과 창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문제 파악과 개선방안 도출에 힘을 모을 때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 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의 행보도 주목된다. 지난 9월 출범 1주년 간담회에서 공공SW사업 개선방안을 연내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는 민간 플랫폼 중심의 클라우드 네이티브 전환을 추진하는 등 이번과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공공 IT인프라 마련에도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 특성상 별도의 예산 없이 각 부처들 통해 사업을 추진하므로, 기존의 행정편의적인 한계를 극복해 얼마나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물음표가 붙는 것도 사실이다.

겉면을 AI와 디지털로 포장한다고 해서 IT강국이 되진 않는다. 첨단기술도 환경과 내실이 갖춰질 때 비로소 그 효용이 발휘된다. 따라서 IT강국에 걸맞은 기반을 닦고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마침 디지털플랫폼정부라는 비전도 마련됐고 업계의 평도 대체로 긍정적이다. 다만 하려면 제대로 힘을 실어서 해야 한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팽동현기자 dhp@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