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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칼럼] 실리콘밸리式으로 바뀌는 임원 인사

박정일 기자   comja77@
입력 2023-11-20 18:25

박정일 산업부장


[박정일 칼럼] 실리콘밸리式으로 바뀌는 임원 인사
올 대기업 임원인사에 '실리콘 밸리式' 바람이 불고 있다. IT(정보기술)혁신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 밸리에선 오너와 CEO(최고경영자), 직원들까지 모든 구성원이 똑같은 방향으로 노력해 결과에 책임을 지는 식으로 조직과 인사가 이뤄진다.


이같은 인사패턴이 태평양 건너 한국에도 상륙했다. "다수의 경영자들이 오너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한 과거와는 천양지차죠" 연말 주요 대기업의 임원 인사를 앞두고 4대 그룹의 한 임원급 인사가 전한한 말이다.
매년 인사가 나올 때마다 '책임경영·신상필벌'이라는 키워드가 반복됐고, 이제는 식상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 말의 뜻은 총수가 전문경영인들을 다스린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말의 의미가 달라졌다. 이제는 총수가 권한을 위임한 기업의 이사회가 전략의 방향을 설정하고, 경영진들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 총수는 경영진의 성과와 이사회의 평가를 참고해 '인사'로 이를 보여준다.

이는 과거 이병철 삼성 창업주나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회장 때처럼 총수의 뜻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리더십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다. 이미 변화의 조짐은 시작됐다. 비금융권에서는 굳이 도입하지 않아도 되는 '선임 사외이사' 제도를 전격 도입한 삼성이 그 사례 중 하나다. 선임 사외이사는 경영진에 주요 현안 관련 보고를 요청하고 '사외이사 회의'를 소집할 권한을 갖는다. 과거 이사회 의장을 겸임했던 총수와 맞먹는 권한을 사외이사에게 부여해 책임경영을 한층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CEO가 총수나 소위 2인자의 '라인'이어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최근 한 그룹이 총수가의 신임을 받아 영입한 CEO를 해고시킨 것 역시 이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총수의 사람이더라도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짐을 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차원에서 대기업들은 이번 인사에서 '실리콘밸리'식 조직문화 혁신에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회장을 비롯해 최태원 회장과 정의선 회장, 구광모 회장 등이 강조하는 것이 '신시장 개척'과 '혁신'이고, 무거운 대기업의 선단식 조직으로는 갈수록 빨라지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 없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어서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우리나라와의 조직문화 차이에 대해 "모든 직원들이 CEO처럼 일한다"라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투명하고 명확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바탕으로 CEO들은 직원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고 대신 실패했을 경우 '해고'라는 책임도 지도록 하는 게 실리콘밸리식 조직 문화다.

국내 기업들이 수년 전부터 직원들의 직책이나 직급 대신 '님'이라는 호칭을 쓰도록 한다거나, 직급 체계를 줄이는 것 역시 실리콘밸리식 소통으로 집단지성을 모으겠다는 총수의 의미가 담겼다. 그런 차원에서 주요 대기업들은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을 보여주는 젊은 경영진을 전면에 배치하거나, 혹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의 경우 지난 17일 '부당합병·분식회계' 의혹 결심 공판에서 경영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업의 선택과 집중, 신사업·신기술 투자, M&A(인수합병)을 통해 모자란 부분을 보완하고, 지배구조의 투명화를 통해 예측하기 어려운 미래에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통해 회사의 존속과 성장을 지켜내고 임직원과 주주, 고객, 협력회사 임직원, 그리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그의 이 같은 발언은 한 달 내 있을 삼성의 사장단 인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손자병법에는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라는 말이 있다. 상급자와 하급자가 동일한 목표를 가지면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뜻이다. 이사회 중심의 책임 경영 강화, 젊은 리더들의 중용, 순혈주의 타파 등이 지향하는 목표가 바로 이 여섯글자다.

총수들은 앞으로 한 달내에 내놓을 임원 인사에서 이 같은 메시지를 어떻게 담을 지 고민할 것으로 보인다. 총수들의 고민의 결과가 주주들과 구성원들의 인정을 받기를 기대해본다, 인사는 만사라는 말은 정치권이 아닌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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