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열기 검색열기

[석병훈 칼럼] 정부의 모순적 가계부채 정책

   
입력 2024-02-12 18:35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석병훈 칼럼] 정부의 모순적 가계부채 정책
올해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 5대 시중은행의 1월 말 가계대출 잔액이 695조3000억 원을 넘어서 지난해 12월 말 대비 2조9000억 원 이상 증가했다. 개인신용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1조 원 이상 감소했으나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전월 대비 4조4000억 원 넘게 증가해 가계대출 증가를 주도했다. 한국은행이 작년 1월 기준금리를 연 3.50%로 인상한 후 현재까지 1년 이상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5월부터 9개월 연속 증가하고 있다.


작년에도 가계대출 증가를 주도했던 것은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정부가 발표한 지난해 은행권 가계대출과 주택담보대출 전년 대비 증가액은 각각 37조1000억 원과 51조6000억 원이다. 고금리가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한 이유는 금융당국이 대규모 정책자금대출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주택담보대출 전년 대비 증가액 중 은행이 자체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은 전년 대비 4조2000억 원 감소했다. 그러나 특례보금자리론, 디딤돌대출,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같은 정책자금대출이 전년 대비 55조8000억 원 증가해 가계대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이처럼 정책자금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이유는 금융당국이 정책자금대출에는 이자율을 낮춰줬을 뿐만 아니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하지 않아 주택 구매를 위한 자금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DSR 규제는 모든 부채의 연간 원금과 이자 상환액을 은행권은 차주 연간소득의 40%, 비은행권은 50%를 넘지 않도록 하는 대출 규제이다.

차주의 원리금 상환능력을 바탕으로 한 대출 규제로 주요 선진국들에서도 널리 활용되는 선진화된 대출 관리 기준이다. 이 DSR 규제는 주택가격이 상승해도 차주의 연간소득이 증가하지 않으면 추가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어 가계대출 증가를 억제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금융당국이 그간 주로 사용되던 담보인정(LTV)비율 기준에 더해 DSR 기준을 대출한도 결정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서민과 주택 실수요층의 자금 애로를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정책자금대출에 DSR 규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고금리와 경기 침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정책자금대출은 큰 폭으로 증가하였다.



금융당국도 가계대출 증가세를 결코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 연초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 성장률 이내가 되도록 관리하고, 대출자의 미래 상환능력을 고려한 대출 관행을 정착시키겠다고 발표한 것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변동금리 대출에 대해 대출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DSR 규제를 도입하고, 전세자금대출에도 단계적으로 DSR 규제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정책들은 가계부채의 증가세를 억제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서민의 자금 애로 해소를 위해 올해도 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40조 원 내외의 정책자금대출을 공급하는 금융당국의 행보는 가계부채 증가세 억제에 대한 정책 의지를 의심하게 한다. 지난달 29일부터 27조 원 규모로 출시된 신생아 특례대출은 대출신청일 전후 2년 이내 출산 또는 입양 등 여러 요건에도 불구하고, 출시 일주일 만에 2조5000억 원 가까이 신청됐다. 또한, 하반기부터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도 시작될 것으로 전망되고, 이를 선반영하여 시장금리는 이미 하락하고 있다.

그러므로 DS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40조 원 규모의 정책자금대출과 대출금리 하락으로 인해 올해는 가계대출이 빠르게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스트레스 DSR 규제와 전세자금대출 DSR 규제를 도입하더라도 과연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이 경상 성장률 이내로 억제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0%를 넘어서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금융당국은 더 이상 모순된 정책으로 금융소비자들과 금융회사들에게 혼선을 주지 말아야 한다. 정책자금대출을 포함한 모든 대출에 예외 없이 DSR 규제를 적용해 대출자의 원리금 상환능력에 따른 대출 원칙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