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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칼럼] 공짜 보조금은 없다, 기술 없으면 토사구팽

박정일 기자   comja77@
입력 2024-04-07 16:59

박정일 산업부장


[박정일 칼럼] 공짜 보조금은 없다, 기술 없으면 토사구팽
'GTX 노선 연장 유치·도로 지하화….' 동네에서 총선에 나선 후보들의 플래카드를 보고 있으면 기대보다는 심란한 생각이 앞선다. 4·10 총선이 이제 이틀밖에 안 남았다. 또 7개월 뒤에는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정해진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고, 이번 선거 결과는 정치 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선거에서 이기는 다수당은 당장 어려운 숙제에 직면한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로 경제 패권다툼을 하고 있는 만큼, 다수당은 정부와 함께 한층 더 정교한 경제·통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올 연말 이후 세계 경제의 흐름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 한국은 '핑퐁게임'의 탁구공 신세다.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산업을 두고 다투는 사이에 끼어있다. 반도체의 예를 들면 미국 정부는 한국에 오는 6월까지 반도체 장비 규제에 동참해 줄 것을 요구했고, 중국 외교부는 지난 3일 "자주적 결정을 내달라"며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 통제에 동참하지 말 것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중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에 들어가는 핵심소재의 수출을 통제하면, 미국이 우호국과의 연대로 대체 공급망을 확보하겠다고 반격하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

다행히 우리 기업들은 미·중 경제패권 다툼에서 실 보다는 득이 더 많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혜택을 받았다. 올 1분기에는 IRA 보조금이 영업이익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주요 완성차 업체와 현지 합작공장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유력한 대안이 한국이어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도 미국 정부의 자국 인공지능(AI) 반도체 육성 정책의 수혜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가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 투자규모를 3배(23조원→59조5000억원)로 늘린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고, 이와 맞물려 미국 정부는 조만간에 삼성전자 반도체 투자에 대한 보조금 규모를 확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 역시 최근 5조2000억원(38억7000만 달러) 규모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패키징 공장을 인디애나주에 짓겠다고 밝혔고, 미국 정부는 이에 화답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엔비디아와 인텔, 퀄컴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AI 반도체 경쟁이 본격화 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변칙 플레이에 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미국의 한국 기업에 대한 압박 수위는 한층 높아질 수 있다. 극단적으로 가정하면 미국에서 보조금을 받았으니 한국 기업들은 당장 중국에서 철수하라는 요구를 할 수도 있다. 중국에 진출한 자국 기업도 많은 만큼, 트럼프 정부라 하더라도 이 같은 무리한 요구를 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긴 하다. 그러나 과거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 행보를 되짚어보면, 트럼프 정부에 명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국내 기업들이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국은 이제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아니라 경쟁국이기 때문이다.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될 당시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는 732억달러 흑자였는데, 지난해에는 180억달러 적자로 뒤집혔다. 가전제품의 경우 중국이 '저가'라는 기존 장점에 '품질'까지 더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경쟁 중이며, 알리와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도 공격적인 투자와 저가 마케팅을 앞세워 한국 시장에서 세를 불리고 있다.

여기에 미국도 다시 제조 강국으로 부활을 노리고 있다. 인텔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진출 선언을 한 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최근 삼성전자보다 더 앞선 미세공정 계획을 내놓은 것이나, 마이크론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보다 먼저 HBM3E 양산 선언을 한 것 등이 그 예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여기에 저출산 위기까지 처한 경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생존할 방법은 대체 불가한 '초격차 기술력'을 갖추는 것 외에는 없다.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의 경쟁력을 원천 기술보다는 공정 경쟁력, 소위 '손재주'에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에서 공장 설계도면이나 생산 운영 관련 인재들을 많이 빼간다는 점 역시 이를 방증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미·중이 공격적인 보조금과 혜택을 앞세워 한국 기업을 끌어들인 이유는 결국 자국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다.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언제든지 '토사구팽' 처지가 될 수 있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결국 기업이 생존할 답은 '기술'에 있다. 기업은 '보조금' 변수와 관계 없이 시장을 보고 현지화를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총선 후 다수당 역시 보조금 '맞불'도 좋지만 혁신기술 기업이 나올 토양을 만들어줘야 한다.

여의도호(號)라는 배의 선장 키를 누가 잡든 반도체·배터리 패권 전쟁의 파도는 더 거세지고 있다. 글로벌 생존경쟁에서 누가 키를 잡는지로 싸울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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