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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왜 `배려도시`인가, 공감과 경쟁력

   
입력 2024-04-10 18:53

김은아 라이프스케이프 크리에이터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왜 `배려도시`인가, 공감과 경쟁력
아프리카계 주민 많았던 소외 도시 런던 '페캄'


도서관 지어 직업훈련·어린이돌봄센터 등 운영
연 방문객수 50만명 명소에 스털링상 수상까지

약자 인정·존중 사회시스템 통해 유명 관광지로


기네스 기록 등재를 위해 2007년 런던을 방문했다. 당시 홈페이지에는 기록인증 신청란과 절차 설명만 있었다. 궁금한 것을 확인할 방법은 전무했다. 장시간의 비행 끝에 기네스 본부에 도착했지만,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반기기는커녕 문전박대였다.

"문의 사항이 있어서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아 응대해드릴 수 없습니다."

"예약할 방법이 없습니다. 전화번호도 이메일도 없어요."

"그건 맞습니다. 그러나, 사전 예약 없는 고객을 응대하지 않는 것이 규정입니다…."

"예약방법을 알려주세요. 예약을 먼저 하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지구 반대편에서 찾아온 외국인 고객에 대한 대접치고는 야멸차고 박정했다. 달리 방법도 없었다. '너희들 뜻대로 하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왜 `배려도시`인가, 공감과 경쟁력
요즘 어르신들이 무인 자동 판매대 앞에서 쩔쩔매다가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럴 때면 기네스 방문 때 기억이 떠오른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기차표를 구하고서도 입석으로 가는 어르신도 많다. 젊은 사람들이 모바일 앱으로 미리 좌석 배정을 다 받아 버리기 때문이다. 도서관 등 공공기관에서도 신체적 약자나 언어 소통이 안 되는 외국인들이 이용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약자'들이 존재한다. 사회적 약자, 디지털 약자, 경제적 약자, 신체적 약자, 문화적 약자 등 처한 상황이나 조건 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된다. 선천적 장애, 출신 지역 등 선택 불가 영역의 약자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가항력적 상황에 놓인 약자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인 마이클 샌델은 "우리 사회가 진정 공정한가?"라고 묻는다. 예일대 법대 교수인 대니얼 마코비치는 "물질과 사회적 보상만을 위해 일하는 엘리트가 정말 행복한지" 의문을 던진다. 공정하지도 평등하지 않은 현실에서 개인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몸부림한다. 자생적 플랫폼을 구축하고 상호 연대도 한다. 디지털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영향력도 행사한다. 그래서 약자인 자신에 대한 배려를 더욱 강조하는지도 모른다.

'약자에 대한 배려'는 도시 디자인에서도 당연히 고려돼야 할 필수 요소다. 도시건축 공간에는 약자가 누려야 할 신체적 편의성은 물론 행복감, 성취감, 만족감 같은 정신적 가치도 포함돼야 한다. 포용도시는 '모두'라는 평균적 가치에 기본을 둔다. 상호연계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다 보니, 약자들의 요구가 섬세하게 반영되기 어렵다. 반면 '배려도시'(compassionate city)는 경제, 사회, 환경 등 모든 스펙트럼에서 취약계층의 요구가 고려된다.

배려도시는 사회구성원의 공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런던 남부 서더크 자치구의 페캄은 1990년대 런던에서 가장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이었다. 대다수가 아프리카계 주민들로 실업률과 문맹률이 높았다. 실직자가 많고, 방과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은 부족했다. 다른 지역과의 고립도 심각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런던시는 페캄에 도서관을 만들기로 했다.

도서관 디자인팀은 페캄 주민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을 설계 과정에 참여시켰다. 실직자들을 위한 전문 직업훈련 과정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 주민 참여가 늘어나면서 도서관이 어린이 돌봄센터 역할도 했다. 도서대출, 열람실 운영 등은 주민들이 직접 맡았다. 도서목록도 자율적으로 선정했다. 그 결과, 런던 내에서 가장 많은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관련 자료를 보유한 독창적인 도서관이 되었다.

페캄도서관은 시민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다. 연평균 방문객 수는 약 50만 명으로 30만 명에 가까운 서더크 자치구 인구보다 많다. 도서관을 시작으로 페캄레벨즈, 페캄플렉스, 페캄마켓 등이 생겨났고 도시는 활력이 넘친다. 건축적 아름다움도 이 도시의 자랑거리다. 2000년 영국왕립건축가협회(RIBA)의 스털링상을 받았다. 공감은 구성원과의 관계다. 주민들의 잠재적인 욕구와 사회적 참여를 끌어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페캄도서관은 없었을 것이다.

런던의 도시 스케일에서 페캄도서관은 '스카프' 같은 존재다. 아주 작은 요소에 불과하지만, 그 역할과 가치는 대단히 크다. 목에 두르는 스카프는 몸을 따뜻하게도 하지만, 패션을 완성한다. 화룡점정이다. 스카프를 고를 때는 헤어스타일부터 신발에 이르기까지 전체를 섬세히 고려해야 한다.

기네스 본부 앞에서 대책도 없이 3일 내내 서 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만남을 시도했다. 눈길도 주지 않던 직원들이 안쓰러웠는지 결국 사무실로 안내해 주었다. 그제야 기록인증을 할 수 있었다. 이후 기네스는 소통방식을 바꾸었다. 회사 홈페이지와 SNS에 소통채널을 마련했다. 그들은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

경쟁에서 이긴 자들이 독식하는 이 시대에 배려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공존'에 대한 절규다. 구성원들은 사회와의 관계, 공감을 원한다. 사회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해야 한다. 배려도시는 사용자로서의 약자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배려도시는 약자도 당연히 누려야 할 도시공간과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디자인한다.

소외층을 위한 작은 도서관 하나가 전체 지역 인구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였다. 시민들의 사랑받는 공간이자 자부심이 되었다. 약자에 대한 공감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도시를 만들었다. 시민들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법을 학습했다. 경험의 접근성은 약자에게는 삶을 누릴 권리를, 일반 시민에게는 양질의 사회적 삶을 제공한다. 배려도시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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