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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석 칼럼] 사회지도층의 국가관 철저히 물어야

   
입력 2024-04-29 18:54

정병석 아름다운서당 이사장·前 노동부차관


[정병석 칼럼] 사회지도층의 국가관 철저히 물어야
사회지도층은 국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책임을 맡은 리더들이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몸 바쳐 일하겠다는 정신과 자세를 가졌는지, 그런 책임에 걸맞는 확고한 국가관을 가졌는지가 될 것이다. 리더로서의 역량보다도 더 중요한 덕목이라 믿는다.


사회지도층에 있는 리더들은 당연히 그런 국가관을 가졌다고 말하겠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요즘 사회지도층의 행태를 보면 국가의 위기상황, 또는 국가와 자신의 이해가 엇갈리는 상황이 올 때 과연 이들이 자신의 이익보다 국가의 안위를 더 중시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선택을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한양이 함락되고 왜군이 파죽지세로 평양까지 쳐들어 오자 선조와 조정 관료들은 혼비백산하여 의주까지 피난을 갔다. 허둥지둥 피난 가는 과정에서 선조 임금이 신세를 한탄하며 울면서 중신들을 불러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묻는다. 몇몇 중신들은 함경도로 도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어떤 관료는 국경을 넘어 명나라로 가자고 제안한다. 선조 임금은 "명나라에 내부(內附)하는 것이 본래의 내 뜻"이라며 명나라로 가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천명한다.

여기에서 '내부'한다는 것은 명나라에 피신해 아예 붙어 살겠다는 의미이며 일시 피난가겠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국가존망의 위기상황에서 군주와 핵심 사대부들이 나라와 백성을 팽개치고 자신의 안전만을 찾아 명나라로 넘어가 거기에서 빌붙어 살겠다는 주장이다.

이때 조정 중신 중 유일하게 서애 류성룡이 나서서 임금이 한 발자국이라도 조선을 벗어나 국경을 넘어가면 조선은 없어진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이런 논란은 조선왕조실록(선조 25년 5~6월)에 다 수록돼 있어 누구라도 바로 확인해 볼 수 있다.

조선의 지배층은 공자·맹자의 사상을 밤낮으로 공부하며 수양해 왔던 계층으로서, 이 유학이란 본래 나라를 태평하게 다스려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치사상이다. 선조는 조선 최고의 유학자로 꼽히는 퇴계와 율곡으로부터 직접 지도를 받은 임금이었다. 그런데 막상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자 임금을 비롯한 지도층은 유학의 가르침은 잊어 버리고 자신의 안전과 당파의 이익만 챙기는 행태를 보였다.


유교에서는 군신간의 충의, 나라에 대한 충절을 대단히 중시했다. 그런데 중국과 조선의 국가 이익이 상충된다면 조선의 지도층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실제 그런 사례가 여럿 있었다. 광해군 때에 여진족이 세운 후금이 명나라에 전쟁을 선포하자 명은 조선 조정에 군대를 동원해 후금을 치라고 요구했다. 광해군이 망해가는 명과 신흥 강국 후금 사이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파병에 난색을 표하자 비변사 당상관들이 대거 나서서 임금을 겁박했다.

"신들은 중국 조정(황제)에 죄를 짓기보다는 차라리 임금에게 죄를 짓는 것이 낫습니다"고 공언했다. 한두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조선 최고의 의결기관인 비변사 당상관들의 집단 항명이었다. 위기상황에서 조선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조국인 조선의 안전과 군주에 대한 충절보다 중화질서와 중국 황제의 안전을 더 중시하며 직속 군주인 광해군의 지시를 거부하겠다고 면전에서 공언한 것이다.

이런 일이 과거 조선이 아니라 지금도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국회의원, 명성있는 학자 등 사회지도층이 한국의 국익보다 중국의 눈치를 더 살피고 북한의 이익에 영합하는 자세를 보이는 행태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선 그런 사람들이 여럿 당선되어 국회로 진출했다. 지금까지는 국민들이 국회의원 후보자의 국가관을 점검할 기회도 없었고 주로 후보자 개개인의 소신, 국가관, 과거행적 등을 따지지 않고 소속 정당이 어디냐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었다.

오만하고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여야 정치인들의 국가관을 점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정책이 국익에 더 도움이 될 것인지, 국가간 관계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몇 번만 질문하면 금방 드러날 일이다.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의 국가관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감시해야 하며 그런 책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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