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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우리 동리 우물물 잡수러 오세요", 100년 전 서울의 명물

   
입력 2024-06-12 18:41

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우리 동리 우물물 잡수러 오세요", 100년 전 서울의 명물

화동(花洞) 복주 우물, 고종이 즐겼던 어수(御水)

삼청동(三淸洞) 성제 우물, 먹을수록 몸에 이로워 운니동(雲泥洞) 쫄쫄 우물, 눈병 낫는 물로 유명
지체 높은 원동(苑洞) 모기, 딴 모기와 혼인 안해


명물(名物)이란 말이 있다. 어느 마을, 어느 골목에 가도 하나쯤 있는 것이 '명물'이다. 일제강점기에도 동네마다 다양한 명물이 있었다. 건물, 저택, 우물, 다리, 음식, 나무 등이다. 세월과 함께 사라져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재미난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100년 전 서울의 명물을 찾아 추억여행을 떠나본다.

1924년 6월 5일자 동아일보에 흥미로운 사고(社告)가 실렸다. "여름이 점점 깊어갑니다. 도회(都會)의 여름이라 더욱 괴롭습니다. 이때를 당하여 동아일보는 사랑하시는 독자 제씨에게 훌륭한 위안거리를 선사치 못한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여러분 앞에 보이는 기사 자체로써 대신할 방법이 없을까 하고 연구한 결과, 우선 이것을 시험하려고 하였습니다. 경성에는 85군데의 동(洞)과 101군데의 정(町)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동리에든지 반드시 그 동리의 명물(名物)이 있을 것이외다. 전례를 들면 종로에 종각(鐘閣), 서소문에 아편굴 같은 것이외다. 이와 같은 명물을 별항에 지정한 100개 동정(洞町)에 100가지를 추려 하루에 둘씩 재미있는 기사와 사진을 아울러 날마다 계속 게재하여 독자 제씨의 취미와 실익을 돕는 동시에 아래의 규정에 따라 약간의 선사를 드리려 합니다."

이 현상 공모는 장안의 뜨거운 호응을 얻어 수많은 응모가 답지했다. 이에 6월 21일자 신문부터 게재를 시작하게 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우물(井)이었다. 옛날에는 한반도 어디를 가더라도 마을이 형성된 곳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물을 얻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 수다를 떨며 동네 온갖 대소사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의 흉을 보기도 하는 곳이었다.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우리 동리 우물물 잡수러 오세요", 100년 전 서울의 명물
첫 번째로 소개된 우물은 '화동(花洞) 복주 우물'이다. "화동은 옛 이름으로 '화개동'입니다. 그래서 화개동의 복주 우물이라 하면 경서 사람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맹현(孟峴) 동산 아래의 이 조그마한 복주 우물은 물맛이 좋고 약물로 신통할 뿐만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27~28년 전에 돌아가신 덕수궁 고종태황제께서 어수(御水)로 봉하시고 이 물을 하루에 세 번씩 갖다가 잡수셨답니다. 그리하여 그 당년에는 순검청(巡檢廳)까지 그 옆에 지어 놓고 파수(把守)를 보았다 합니다. 그러다가 고종태황제께서 돌아가시자 더 이상 어수로 봉하지 아니 하였으나 워낙 물이 좋은 고로 춘하추동 사시를 두고 사람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더욱 여름철에는 차고 시원하고 맛있고 약(藥)이 되는 이 복주 우물을 먹기 위하여 사나이, 아낙네, 노인, 어린아이할 것 없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화개동 바닥에는 사람의 바다가 됩니다. 그 맛없고 밍밍한 수돗물만 잡수시던 어른들이 한 번만 우리 동네 복주 우물 맛을 보시면 참 기가 막히게 좋다고 탄복들을 한답니다. 누구시든지 여름철 더운 때 우리 동리에 유명한 이 물을 한번 잡수러 오십시오."(1924년 6월 29일자 동아일보)

두 번째 소개된 우물은 '삼청동(三淸洞) 성제 우물'이다. "북악산 밑에 있는 성제 우물은 우리 삼청동의 명물입니다. 옛날에 이 우물에서 무당들이 북두칠성을 제사하였다 하여 성제(星祭) 우물이라 하였답니다. 역사가 오래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신효(神效)하여 더욱 유명합니다. 가슴 앓이 10년을 앓던 사람도 이 물 몇 번만 먹으면 대번에 낫고 그 외에 모든 속병 있는 사람도 대개 이 물을 먹고서는 낫는다고 합니다. 화개동 '복주 우물'이 어수(御水)로 봉해져 물이 좋다고 하지마는, 맨 처음에 어수를 봉하기는 성제 우물에다 봉하였더랍니다. 그러나 북악산 밑 험한 길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다니기가 어떻게 어렵던지 고종태황제께서도 물을 길으러 다니는 사람을 생각하시고 좋은 물은 못 먹더라도 가깝고 교통 편한 성제 우물을 가져와라 하셔서 나중에 성제 우물로 어수를 봉하게 된 것이랍니다. 다른 보통 물은 많이 먹으면 배를 앓는다 하지마는 우리 성제 우물은 많이 먹을수록 몸에 이로워 오는 사람들은 짜고 짠 암치(민어를 소금에 절여 만든 것) 조각을 가지고 와서 뜯어 먹어가며 물배를 채워 가지고 간답니다. 요새같이 더운 때는 사람이 어찌 많은지 이 물 한 바가지 얻어먹으려면 한나절이나 기다려야 먹게 되지요. 어떻든지 우리 동네의 명물입니다." (1924년 6월 30일자 동아일보)

세 번째 소개된 것은 '운니동(雲泥洞) 쫄쫄 우물'이다. "사시당춘(四時當春) 한 모양으로 쫄쫄 흐르는 것이 동구 안에서 유명한 운니동 쫄쫄 우물이랍니다. 동구 안 사는 사람치고는 삼척(三尺) 소동(小童)으로부터 70~80세 노인까지 이 쫄쫄 우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쫄쫄 우물이 물이 깊고 맑아서 유명한 것도 아니랍니다. 우물이 아니라 돌다리 밑 개울에 돈 잎 같은 조그마한 구멍에서 샘물같이 쫄쫄 흐르는, 말 하자면 우물이라기는 주제넘은 것이지요. 아마 샘통이라면 좋겠습니다 마는, 이것을 우물이라 하니 무슨 곡절이 있겠지요. 옛날도 옛날, 이 쫄쫄 우물 자리에 커다란 정말 우물이 있었더랍니다. 그 동리 사는 점 잘 치는 장님이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앞을 지나다가 발을 헛디뎌 우물에 풍덩 빠져 죽고 말았답니다. 그 후에 동리 사람들이 모여 우물을 메워 버렸더니, 메운 자리에서 샘물이 쫄쫄 흘러나오는 것을 쫄쫄 우물이라고 이름 지었다 합니다. 이 쫄쫄 우물은 그 장님의 영(靈)이 붙어 이 물에 앓는 눈을 씻으면 신통하게 눈이 낫는답니다.그래서 요사이도 밤마다 밤마다 밥도 지어 오고 돈고 갔다가 바치고 눈을 씻고 가는 눈 앓는 사람이 많답니다."(1924년 7월 1일자 동아일보)

이 외에도 특이한 명물들이 소개된다. '다옥정(茶屋町)의 기생(妓生)'이나 '돈의동(敦義洞) 나무 시장', '원동(苑洞) 모기'도 눈에 띈다. 아마도 원동에 모기가 지독히도 많았던 모양이다. 원동 모기는 한 동네 명물 노릇을 하는 까닭인지 지체가 대단하다. 계동(桂洞) 모기와는 혼인(婚姻)도 아니한다고 한다.

100년이 지난 요즘에 다시 한번 '우리 동리의 명물'이라는 것을 현상 응모해 보면 어떤 것들을 명물이라며 투고할까? 운니동의 '쫄쫄 우물'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명물이 나올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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