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친윤·친한계 입장차 커
6개월내 하야·개헌 퇴진 주장
민주 탄핵 소추안 반복 발의
국민의힘이 9일 최고위원회의와 비상 의원총회를 잇달아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조기퇴진 로드맵' 논의를 시작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친윤계와 친한계간 입장 차가 크기 때문이다. 친한 쪽에서는 대통령 스스로 하야 의사를 밝히고 '6개월 이내'를 제시했지만, 친윤 쪽에서는 개헌을 통한 1~2년 뒤 퇴진 일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야당의 2차 탄핵 열차는 속도를 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을 다시 발의해 오는 12일 본회의에 보고하고 14일 표결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이번에도 부결되면 매주 토요일마다 거듭 탄핵소추안을 표결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국회법에 일사부재의 원칙이 있으나 이를 회피할 수단이 있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 민주당이 탄핵소추안을 무한 반복해도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한동훈 대표 등 친한계는 지난 7일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윤 대통령의 '질서있는 퇴진'을 전제로 당론 부결을 따랐다. 탄핵소추안 표결에 앞서 윤 대통령도 비상계엄에 대한 사과성명을 통해 "저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언제까지 물러나겠다고 밝혔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자신의 거취를 당에 떠넘김으로써 국민의힘은 숙제를 떠안게 됐다.
윤 대통령은 법적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스스로 '유폐'를 택했고 당과 내각에 국정을 넘긴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8일 공동 성명을 통해 총리와 여당이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한·한 성명이 나오자마자 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이 유고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근거로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국정을 하겠다는 것이냐"고 몰아붙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국방부는 "국군 통수권은 법적으로 대통령에게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실제로 공직에 대한 임면권을 행사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 대표와 한 총리가 "2차 내란을 획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등 야당의 이런 주장의 속내는 여당과 윤 대통령의 곤궁한 상태를 공격해 탄핵을 이끌어내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야당의 주장이 틀리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하야, 탄핵, 그밖의 사유로 유고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총리가 국정을 총괄할 수 없다. 더구나 여당 대표가 총리와 국정을 '공동 운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야당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밀어붙이고 있고, 여권 내 이탈표를 노리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드러났듯 여권 내에서는 흔들리는 의원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친한계를 중심으로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전제로 당론 부결에 참여했던 의원들이 전제 조건이 표류하자 '단일대오'를 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탄핵을 지지하는 지역구 여론을 전연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지난 7일 탄핵 표결에서 표결에 참가해 찬성 표를 던진 안철수, 김예지 의원은 14일 표결에서도 찬성할 것이 유력하다. 여기에 표결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진 김상욱 의원은 '조기 퇴진 로드맵'이 안 나올 경우 2차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질 것이란 뜻을 피력했다. 여기에 친한 초선 젊은층 의원들을 중심으로 이탈표가 나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민주당이 국민의힘 친한계 초선 의원들을 대상으로 적극 설득 작업을 펴고 있는 것도 변수다.
증시가 폭락하고 환율이 급등하고 있고, 외교와 통상 등 기업들의 보호막이 될 정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조기 로드맵 도출을 압박하는 요소다. 더구나 법무부는 이날 윤 대통령에 대해 내란 및 직권남용 혐의를 들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출국금지를 당하는 것은 초유의 일이다.
국민의힘 친한계와 친윤계가 윤 대통령의 퇴진 일정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지만, 공감대를 형성한 지점은 있다. 지금 바로 탄핵에 들어가 헌재에서 수개월 후 기각되지 않으면 보궐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는 '정해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 대표에 대한 재판의 변수는 고려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이 대표와 관련한 재판이 의외의 결과가 나오고 지연이 계속됐듯 이 대표가 사법적으로 배제되는 건 믿을 게 못 된다. 이 두려움 때문에 탄핵소추안에 응하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근혜 탄핵, 문재인 당선'이라는 기억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공통의 트라우마가 언제까지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국정혼란이 계속되고 여의도 군중집회가 가열되며 야당의 공세가 거세지면, 또 윤 대통령 퇴진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이탈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결국 금주 중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의 조기퇴진 로드맵을 내놓지 못한다면, 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은 불가피해질 수 있다.
이규화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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