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진 산업부 재계팀장
![[현장칼럼] 탄핵 정국에 눈치보는 기업들](http://contents.dt.co.kr/images/202412/2024121002102269064001[1].jpg?var=1829 "[현장칼럼] 탄핵 정국에 눈치보는 기업들")
하지만 최근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지난 4일 당일 분위기에 대해 "살벌했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내부적으로는 여러 상황을 보고 있겠지만 대외적으로 '좋다', '나쁘다'를 언급하는 것이 너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괜한 말로 정치권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탄핵 정국에 들어섰지만 기업들은 표면적으론 조용하다. 증시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탈하고, 환율은 최근 2년새 최고점을 찍는 등 대내외 변수가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잘잘못을 따지며 연일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기업들은 예상치 못한 '외적 변수'인 만큼 알아서 감내해야 하는 분위기다.
야권과 밀접한 민주노총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고, 산하의 금속노조는 이미 부분파업에 들어서 생산 차질이 현실화됐다. 금속노조는 오는 11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내년 사업계획에도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연말 마감 실적을 챙겨야 하는 영업 현장에서는 답답함의 하소연도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기업들의 걱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다음 스텝을 걱정하는 눈치다. 일단은 '스톱'됐지만,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지배구조 규제 강화법이 국회에 다수 올라와 있는 상태다. 언제든지 다시 논의될 사안으로, 탄핵 정국 이후 자칫 여야간 균형이 무너지면 기업들은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앞서 야당은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이번 정기국회 내 처리하기로 했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들의 투자 위축, 소송 남발, 투기자본 먹튀 등을 우려하고 있다. 이 외에도 상법 개정안에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도 담겨 있어 기업들의 경영권이 약해지고,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제인협회와 삼성·SK·현대차·LG 등 4대그룹 등은 지난달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8년 전 탄핵 정국과는 차이가 있지만, 정국이 제자리로 돌아오더라도 기업들이 목소리를 제대로 낼 분위기가 조성될 지는 미지수다. 현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 더욱 심화될 경우 정치성향을 떠나 기업들이 갖는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8년 전 정치논리에 휘말려 4대그룹이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경협)를 탈퇴하고, 삼성전자가 미래전략실(미전실)을 해체한 경험도 괜시리 눈치를 보게 하는 사례다.
경제는 정치논리로 정답이 가려지지 않는다. 지난 정권에서는 원전(원자력 발전)육성 정책이 사실상 폐기되다시피 했지만, 이번 정권에서는 국가 효자 수출 품목으로 다시 자리매김한 것이 한 예다.
우리가 정치논리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동안 전 세계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전환, 4차 산업혁명 신사업을 미래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대관' 역량의 중요성에 국가경제 성장이 중심에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 세계의 경제 시계는 한국의 정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장우진 산업부 재계팀장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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