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檢 특활비 전액 삭감
與野 마지막 합의시도 끝내 불발
헌정사상 최초로 정부 예산안에서 '감액'만 반영된 수정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장기화된 여야의 자존심 싸움에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까지 겹친 결과다. 국회는 10일 본회의를 열고 앞서 지난달 29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을 표결에 부쳤다. 투표 결과 재석 278명 중 찬성 183명, 반대 94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총수입 예산은 정부안보다 3000억원가량 깎인 651조5500억원, 총지출 예산은 정부안보다 4조1000억원(0.6%) 감액된 673조3000억원이다. 올해 예산(656조6000억원) 대비 2.5% 증가한 규모다.
정부안 대비 세부 감액 내역은 정부 예비비가 기존 4조8000억원에서 2조4000억원으로 절반 삭감됐고, 국고채 이자 상환 예산에서도 5000억원이 삭감됐다.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의 특수활동비, 검찰·감사원의 특정업무경비와 특활비, 경찰 특활비 등은 전액 삭감됐다.
또 산업통상자원부의 '대왕고래 프로젝트'(동해 심해 가스전) 예산 497억원, 여성가족부 아이돌봄 지원사업 예산 384억원,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 사업 229억원, 보건복지부 전국민 마음 투자 지원 예산 74억원 등이 삭감됐다.
민주당은 앞서 지난달 29일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정부 원안 중 4조1000억원을 감액한 예산안을 여당의 반발 속 단독 처리한 바 있다. 민주당은 법정 예산처리 시한인 이달 2일 이를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었으나, 우원식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10일까지 여야의 합의를 요청했다.
여야는 이날 오후 마지막 협상을 가졌으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등 혼돈 속에 제대로 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우 의장을 만나 "여야 협의를 통한 예산안 처리가 이뤄져야 한다"며 시간을 더 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정은 본회의 당일인 이날 오전 예비비 1억5000억원을 포함해 민주당이 삭감한 예산 일부 복원과 함께 지역화폐 예산 등 민주당이 추진하는 민생법안 예산 확대 등 총 3조4000억원 규모의 증액안을 제시했으나,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결국 민주당의 삭감안이 본회의에 올라 그대로 통과됐다.
예산안을 두고 정부여당과 국회의 반응도 극명히 엇갈렸다. 본회의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예산안 의결 후 인사말에서 "내년도 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안을 의결한 데 감사하다"며 "다만 여야 합의를 통해 국민과 기업의 경제활동을 더 원활히 지원할 예산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가 발전의 길로 나아가도록 정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흔들림 없이 일해나가겠다"며 "민생안정과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해 국회에서도 적극적 협조와 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반면 우 의장은 "감액 예산을 통과하게 돼 무엇보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면서 "예산안 처리에 이르는 과정에서 정부의 태도에 유감을 표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회의 활동을 금지한다는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로 예산 논의가 불가능한 상황을 초래해놓고 오히려 예산 처리 지연의 책임을 국회로 넘기려 했고 민생 예산 증액에 미온적인 태도를 고수했다"며 "예산심의 확정 절차가 정부에 유리한 점에 기대어 국회 예산 심의권을 경시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전혜인기자 hy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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