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마크롱과 윤석열 `독단`의 최후

입력 2024-12-11 18:22

김광태 디지털콘텐츠국 부장

다사다난했던 2024년. 해마다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정리하는 용어들이 나오곤 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뇌 썩음'(brain rot)을 선정했다고 한다. 옥스퍼드사전을 발간하는 옥스퍼드대 출반부는 '뇌 썩음'은 사소하거나 하찮은 자료를 과잉 소비한 결과 인간의 정신적·지적 상태가 퇴보하는 현상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세계 곳곳에서 정치적 퇴보 현상도 뚜렷해진 것 같다. 세계는 프랑스와 한국에서 일어난 느닷없는 변고에 놀랐다. 프랑스 정부는 붕괴됐고 한국은 계엄사태로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민주주의 모범국으로 불리던 이 두 나라 작금의 현실이 국내외에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프랑스와 한국은 같은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운영면에선 다른 점이 더 많다. 그래서 단순 비교하기엔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국가 위기는 묘하게 닮았다. 진영간 극단적 대립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과 비극을 낳았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이원집정부제다. 대통령은 국가수반으로서 외교·국방을 담당하며 총리와 각료 임면권, 비상 권한 발동권, 의회 해산권 등의 권한이 있다. 총리는 정부 수반으로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한다. 대통령은 총리와 내각의 불신임과 관계없이 임기를 보장 받는다. 현행법상 대통령은 본인의 뜻에 맞는 사람을 총리에 임명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총선 민의를 거스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총리를 내세운 것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을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통상 의회 다수당 출신 인사를 총리로 임명하는 관례를 깨고 범여권과 그나마 결이 비슷한 우파 공화당 출신 미셸 바르니에 총리를 임명했다. 공화당은 지난 6월 총선에서 득표율이 겨우 4위에 그친 소수당이다. 바르니에 정부의 운명은 시작부터 불안했다.

바르니에 내각은 결국 지난 주 하원에서 야권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불신임됐다. 출범한지 3개월만에 내각 총사퇴로 막을 내린 것이다. 프랑스 제5공화국 역사상 최단기간 집권한 비운의 정권으로 기록됐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프랑스 총리의 '의회 패싱' 때문이었다. 정부와 야당은 2025년 예산안을 두고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다. 정부는 국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공공 지출 감축과 증세를 골자로 한 내년도 예산안을 하원에 제출했지만 야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좌파 정당은 이 예산안이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또한 극우 진영 역시 국민들의 구매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바르니에 내각은 야당의 예산안 반대에 꼼수로 대응했다. 바르니에 총리는 내년도 예산안에 속하는 사회보장 재정법안을 헌법 49조3항을 발동해 의회 표결없이 채택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치욕적이라며 불신임안을 통과시켜 내각을 붕괴시켰다. 애초부터 바르니에 내각의 정치적 기반이 허약했던 터라 내각 붕괴는 일찌감치 예견됐다.

바르니에 내각이 무너지면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도 불투명해졌다. 연말까지 내년도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프랑스 5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공공행정이 셧다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제 다시 새 총리를 찾아나서야 한다. 여당 의석이 야당보다 적어 야당의 반대를 뚫을 인물을 찾거나 야당이 미는 총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야당은 여세를 몰아 마크롱 대통령의 사임까지 요구하고 있다.

타협과 소통은 민주주의 작동 원리다. 누구든 이 원리를 깨뜨리는 순간 재앙은 시작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내각 붕괴를 가져왔고 윤석열 대통령은 분을 못이겨 아예 판을 엎어버렸다. 추락은 한 순간이다.

김광태 디지털콘텐츠국 부장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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