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열기 검색열기

[포럼] 공권력 무력화하는 블라인드 시스템

   
입력 2025-02-20 16:02

유상선 건국대 안보재난관리학과 겸임교수


[포럼] 공권력 무력화하는 블라인드 시스템
한 작가가 사각기둥의 나무 막대를 그렸다. 왼쪽에서 보면 네 개로 보이고, 오른쪽에서 보면 세 개로 보인다. 그림의 중간쯤에 블라인드 처리하면 왼쪽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하늘이 무너져도 네 개라고 말하고, 반대로 오른쪽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죽어도 세 개라고 주장한다. 이런 다툼은 블라인드를 걷어내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 그림의 구성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쟁, 혼돈을 잘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상은 정치와 법률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국회의 의결이나 정부의 집행을 두고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는 경우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종종 봐왔다.
최근 국회 거야가 주도한 줄탄핵과 예산삭감이 그렇고, 그에 맞서 발령한 비상계엄 과정도 마찬가지다. 온 국민이 신문방송이나 뉴미디어를 통해 각자 오른쪽이나 왼쪽의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전체 맥락이 블라인드에 가려있어 생업에 바쁜 국민은 쉽게 알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블라인드가 걷히면 마침내 깨닫게 된다.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과거의 사례를 소환해보자.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정원장의 불법감청 고백 사흘 뒤인 8월 8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정원 불법감청 관련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불법감청 고백 사건과 관련해 음모론이 팽배했었다.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아무런 의도가 없다. 이 사실이 노출된 것은 내가 파헤친 것이 아니라 그냥 터져나온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덮어버릴 수는 없으며, 앞에 부닥친 진실을 비켜 갈 수도 없으며, 적어도 내가 부닥친 이상 최선을 다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노 대통령은 "국가가 갖는 제도를 구체적이고 명백한 사유 없이 무력화 시켜버리는 발상, 그것이 지금 당장은 국민의 기분에 영합할지 모르나 장래 국가를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니다. 국가가 만든 제도는 전략적으로 쓰고 안 쓰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제도대로 써야 한다"고 해 그 당시 특검 도입 주장에 대해 분명한 반대를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통치 철학에 기반한 정책 결정은 자유 법치국가의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지지해야 할 것이다. 불법 감청 고백 이후 감청 관련 법령을 확고히 재정비했었더라면 말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치 지금의 혼란을 예지라도 하였듯이, 노 대통령의 결단은 당시 우려했던 대로 국가 제도를 무력화시켜 버리는 마중물이 되고 말았다. 노 대통령의 통치 무대 뒤에 암약하고 있던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수사기관의 합법적인 감청 제도를 방해하여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을 막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간첩이나 마약, 부정부패에 관한 범죄 수사와 증거 수집의 보충적 수단이 없어졌다. 실체적 진실 규명에 필요한 최소한의 보충적 수단과 방법 즉, 감청 집행 관련 법률과 시행령 개정을 반대하는 집단이 적지 않다.

이들은 반대의 정당화 명분으로 '인권'을 내세운다. 인권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그렇지만 블라인드를 살짝 걷어 보면 사실상 인권과 거의 무관하다. 범죄 친화적 정치 집단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선택적 인권이라는 것을 단박 알 수 있다.

공권력 무력화의 블라인드 속에서 반쪽짜리 기능조차 하지 못하는 형법 제98조(간첩죄)와 통신비밀보호법 제15조의2 및 시행령 제41조(전기통신사업자의 협조의무 등)를 즉각 개정해야 한다. 두 개의 법률 미비 상태가 국가안보를 위협하고 범죄의 치명적 약점을 덮어주는 형국이다. 수사기관에서 휴대폰 감청을 포기한 이래 미제사건과 재판 지연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 최근 국정 마비와 사법 혼란마저도 바로 블라인드 시스템이 작동해왔기 때문으로 의심이 든다.


블라인드 뒤에서 왼쪽과 오른쪽이 서로 다툴 일이 아닐 것이다.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문제이다. 블라인드 뒤에는 왜곡, 선동, 가짜, 기만이 우글거린다. 우리 모두 공권력의 무력화를 유발하는 블라인드 시스템을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留� �꾨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