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열기 검색열기

[이덕환 칼럼] 세계 최초 `AI 교과서`의 불안한 출발

   
입력 2025-03-06 18:19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칼럼] 세계 최초 `AI 교과서`의 불안한 출발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AIDT)가 드디어 학교 현장에 투입된다. 디지털 교과서에 탑재된 인공지능이 학생의 학업 능력을 다면적으로 파악해서 학생에게 가장 적합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한다. 같은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사실은 저마다 개별적으로 특화된 서로 다른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교실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학생의 능력 차이를 무시하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획일적인 집단교육의 시대는 끝난다. 학업 성과가 떨어지는 학생일수록 더 큰 학습 효과가 나타나는 기적이 펼쳐진다. 이제 수포자·영포자·과포자는 사라질 것이다. 노동경제학자에서 최고의 교육행정 전문가로 변신한 이주호 장관이 디지털 경제학을 전공한 딸과 함께 직접 확인한 '명백한 교육학적 사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AI 디지털 교과서의 출발이 몹시 불안하다. 이미 새 학기가 시작했는데 교실에서는 AI 디지털 교과서를 찾아볼 수 없다. 학생용 단말기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청이 예산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고, 엄청난 물량을 한꺼번에 준비해야 하는 공급사도 부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연말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AI 교과서는 교사에게도 여전히 낯선 형편이다. 이제야 비상대응반을 운영한다고 허둥거리는 교육청도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의 채택률이 35%에 지나지 않는다. 초중고 3곳 중 2곳이 AI 디지털 교과서의 기적을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 편차도 심하다. 대구는 100%의 채택률을 기록했는데 세종시의 채택률은 8%에 지나지 않는다. 교육감의 정치적 소신과 성향이 만들어낸 황당한 일이다. 초중고 교실이 정치판의 놀이터가 돼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내년에는 강제로 밀어붙일 태세다.

학생에게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교육감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충분히 검증되고 확인된 교육을 요구할 권리도 중요하다. 적어도 새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학생에게 의무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교육이라면 더욱 그렇다. 학생은 실험용 쥐가 아니다. 장관의 개인적인 소신을 무작정 믿어달라는 요구는 무례한 억지다.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고작 2년 전에 처음 등장한 미완성의 미래 기술인 생성형 AI에게는 '교사 자격증'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학생의 학업 능력이나 창의성을 다면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객관적 근거도 없다. 에듀테크 기업이 미리 탑재해 놓은 객관식 정답을 확인하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수학적 추론 능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생성형 AI가 학생의 '맞춤형' 교육에 필요한 유의미한 질문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는 공허한 것이다. 학생의 영어 발음 교정 정도가 고작일 수 있다. 수없이 다양한 가능성을 고민해야 하는 수학·과학의 맞춤형 교육은 현재 수준의 생성형 AI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생성형 AI의 가장 심각한 단점인 '환각'(오류)의 문제도 심각하다. 생성형 AI의 능력은 개발 과정에서 기계학습에 사용한 데이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AI의 '주권'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그런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교사의 설명도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AI 디지털 교과서의 오류는 모든 학생에게 전방위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AI 교과서를 선진국이 강조하는 AI 교육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고작 1년 만에 졸속으로 개발한 세계 최초의 AI 디지털 교과서의 미래는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역시 이주호 장관이 '스마트 교육'이라고 밀어붙였다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린 '디지털 교과서'의 실패를 다시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AI 디지털 교과서가 학생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교육권과 디지털 중독을 걱정하는 교사·학부모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