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4항 및 제158조 제4항을 보면 선거인은 투표지를 '기표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게 접어' 투표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에 넣거나 회송용 봉투에 넣어 봉함한 후 사전투표함에 넣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투표 용지를 접어서 투표함에 넣는 것은 상식이고, 투표시 그렇게 하도록 안내도 받는다.
이렇게 접히지 않은 빳빳한 투표용지가 다발로 발견된 것은 누군가 급하게 다수 투표지를 한꺼번에 인쇄한후 채워넣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1960년 3.15 부정선거 때도 '빳빳한 투표용지'가 다수 발견되었다는 제보가 있어 검증해본 결과 사실로 밝혀진 바가 있다. 이것은 동아일보 1960년 4월 17일자 기사에 헤드라인으로 나와있다. 그래서 4.19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해 2022년 대법원이 판시한 내용을 직접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당일투표나 관내사전투표의 경우 선거인이 투표지를 접지 않은 채로 투표함에 투입하는 것이 가능해 보이고, 관외사전투표의 경우에도 이 사건 선거 지역구 사전투표용지에 인쇄되어 있는 후보자가 4명에 불과하여 접지 않고도 회송용 봉투에 투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위 검증기일에 확인한 투표지는 개표 완료 후 유·무효별, 후보자별로 각 분류되고 100매 단위로 묶여 상당기간 증거보전이 되어 있었으므로 외관상으로는 투표지에 접힌 흔적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원고가 '접힌 흔적이 없다' 고 선별한 투표지 중 상당수에서 실제로는 접힌 흔적이 확인되었던 사정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증거보전되어 있는 투표지가 접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성명불상의 특정인'이 대량으로 인쇄하여 투입한 위조된 투표지로 보아야 한다는 원고의 주장은, 그 전제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이유 없다." (대법원 판결문 pp.29-30)
최근 3년 전에 제기된 지방선거 불복소송에 대한 재검표가 이루어졌다. 강북구청장 투표함을 열어보니 빳빳한 투표용지가 다발로 발견된 것이다. 심지어 투표함 봉인지 제거 흔적도 발견했다. 관내와 관외를 가리지 않고 사용한 흔적이 있는 투표지 묶음과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투표지 묶음이 확연하게 구분됐다. 투표용지는 접혀있거나 손때가 묻기 마련인데 일부 사전 투표지는 마치 갓 인쇄한 것처럼 구김이 전혀 없는 신권 다발 상태였다.
대한민국 선거행정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총체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부정선거 의혹 자체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의혹을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해소하지 않고, 사회적 여론몰이에 의존하다가 뒤늦은 소극적 사법 판결로 문제를 봉합해버리는 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22년 대법원 선거소송 판결은 원고의 입증 책임을 과도하게 엄격하게 설정하여 부정선거 행위자의 주체, 일시, 장소까지 특정하고 부정행위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사를 위한 공권력과 같은 권한을 민간인이 발휘할 수는 없고, 수사기관이 협조하지 않는 환경에서 민간인이 이런 입증까지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정도면 2022년 대법원 판결은 그 권위를 잃을뿐만 아니라, 부정선거의 물증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까지 읽힌다. 결국 선관위의 책임을 비호해주는 조직이 대법원이란 말인가. 헌법상 그 정치적 중립성을 무한정 인정해준 두 기관이 공생관계 속에서 그 특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말인가. 수많은 인사비리를 저지르는 '가족공동체'가 된 선관위가 국민들의 부정선거 검증 요구를 껀껀이 무시하고 큰소리치며 지금까지 군림해온 이유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란 말인가. 2년이 넘게 부정선거 소송을 대법원이 질질 끌어준 덕분에 중앙선관위 서버도 갈아치울 수 있었고, 2022년 판결에서도 선관위에 책임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정황증거, 통계증거, 직접증거까지 대법원이 나서서 부인해준 것이란 말인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젊은 세대들까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존재 자체의 당위성과 대법원 선거소송 판결의 권위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 상황은 단순히 선거제도의 운영과 관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주권적 권리의 본원성이 훼손되는 총체적 국가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에게 대법원과 선관위는 석고대죄하고 스스로 진실을 조사하여 자정해나가는 작업을 시작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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