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혁신기업] 산업현장 뛰어든 로봇석학 "농업은 AI로봇이 가장 빨리 꽃피울 영역"

입력 2025-03-09 19:07

세계 최고 기술학회 IEEE석좌회원·자율수중로봇 분야 권위자
美 하와이대서 자율수중로봇 연구…KIST·로봇융합硏서 이어가
대동그룹과 손잡고 지난해 10월 회사 설립… 경영자로 탈바꿈
그룹 네트워크·생산시설 활용해 국내기업 해외 진출 도울 것
첫 제품 '운반 로봇' 제작… 수확물 운반부터 타 산업 확장 가능
AI적용 최적 경로·작업 효율성 UP… 방제·제초 로봇도 준비중
미국·유럽 글로벌 시장 진출 모색… 중국·일본 기업 겨뤄볼만
연구나 산업현장 세일즈 비슷… 경험·전문성 바탕 성과낼 것

[스타트업·혁신기업] 산업현장 뛰어든 로봇석학 "농업은 AI로봇이 가장 빨리 꽃피울 영역" — 여준구 대동로보틱스 대표

여준구 대동로보틱스 대표
"일생 동안 연구한 결과물이 실생활에서 쓰이는 것을 보는 게 연구자들의 꿈이죠. 그런 면에서 전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여준구 대동로보틱스 대표는 "농업은 전 산업분야 중에서도 인공지능(AI) 로봇이 가장 빠르게 꽃피울 수 있는 영역 중 하나"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여 대표는 로봇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최근까지 한국로봇융합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대동로보틱스는 국내 1위 농기계 기업 대동그룹이 로봇융합연구원과 손잡고 지난해 10월 세운 회사다. 대동그룹이 투자하고 로봇융합연구원은 기술을 출자했다. 회사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여 대표는 지난달초 로봇을 시장에 안착시키는 미션을 이끄는 경영자로 옷을 갈아입었다.

여 대표는 "지난 2년간 해온 공동연구의 결과물이 산업화 수준까지 올라오고, 최근 로봇 붐이 일어나면서 아예 회사를 세우자는 의기투합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여 대표는 평생 자율수중로봇을 파고든 전문가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후 미 오리건주립대에서 로봇 전공으로 기계공학 석·박사를 받았다. 하와이주립대 기계공학과·정보전산학과 교수를 겸직하며 1980년대부터 자율수중로봇을 연구했다. 1991년 미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등 로봇, 특히 자율수중로봇 분야 세계적인 석학으로 인정받는다. 세계 최고 기술학회인 IEEE의 석좌회원이기도 하다.

약 18년간의 교수생활을 접은 그는 2001년부터 6년간 미 국립과학재단(NSF)에서 로봇·컴퓨터비전 분야 연구과제 기획과 선정·평가·관리를 총괄했다. 2006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항공대 5·6대 총장을 역임한 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로봇·미디어연구소 초대 소장을 거쳐 2019년부터 로봇융합연구원장을 지냈다.

평생을 로봇과 함께 해온 그는 최근 AI의 부상이 로봇 분야에 열어줄 기회에 대해 기대가 크다. 그 시점에 딱 알맞게 산업계로 활동무대를 옮긴 만큼 로봇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저력을 보여주는 과제가 그의 앞에 놓였다.

여 대표는 "로봇분야에서 우리나라에 희망이 있음을 느낀다. 이전의 로봇 스타트업들과 달리 대학에서 오랜 기간 로봇을 연구한 서일홍, 송재복, 오준호 교수 같은 실력자들이 원천기술을 가지고 스타트업을 세웠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나라에서 성공하는 로봇 기업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여 대표는 그들과 달리 특정 산업에 강한 기업과 한 배를 타기로 결정했다. 로봇 회사가 성공하려면 특정 산업영역을 쥐고 있는 게 중요한 만큼 70년 업력의 대동과 함께하는 것이 엄청난 이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여 대표는 "일반적인 로봇 스타트업은 시장에서 생존하기가 만만치 않다. 성장하려면 해외 시장에 나가야 하는데 영업망과 서비스망을 갖추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대동은 이미 오랜 경험과 해외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강점을 활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글로벌 시장 진출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글로벌 농기계와 농업로봇 시장에서 대표적인 기업은 미국의 존디어다. 존디어 역시 '농업분야의 테슬라'가 되겠다는 비전을 세우고 기계회사에서 소프트웨어·데이터 중심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여 대표는 "농기계는 더 이상 씨 뿌리고 수확하고 비료 주는 데 머물지 않는다. 센서를 이용해 토질 데이터를 확보하고, 날씨 등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서 농부가 언제 어떤 씨를 뿌리고 언제 수확해서 시장에 낼지를 결정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이 흐름을 이끄는 곳은 대동그룹이다. 미래 3대 산업으로 스마트 농기계와 스마트팜, 모빌리티를 꼽고 신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 중심에 대동로보틱스와 IT 전문기업 대동애그테크, AI 기업 대동AI랩이 있다.

대동로보틱스의 첫 제품은 '운반 로봇'이다. 농업 현장에서 노동력을 대체할 수 있는 기본 모델로, 수확물 운반을 비롯해 건설 현장 등 다른 산업군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크다. 여 대표는 "처음부터 복잡한 기능을 갖춘 로봇을 만들기보다, 가장 수요가 많은 부분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운반 로봇은 기존 농업용 기계와 달리, 단순히 짐을 나르는 기능을 넘어, AI를 활용해 최적의 동선을 계산하고 장애물을 인식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기존의 운반 장비가 단순히 기계적인 조작을 필요로 했다면, 대동로보틱스가 개발한 운반 로봇은 스스로 환경을 분석하고 더 효율적인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

여 대표는 "농업 종사자가 주요 고객이지만 비농업 분야도 개척하고 있다. 작년 포스코 제철소 내부에서 쓸 수 있는 스키드로더 형태 로봇을 대동이 제작한 적이 있다"면서 "이미 건설회사 등에서 문의가 오고 있다. 글로벌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연매출 1조 규모의 거대 농업법인이 시연을 의뢰해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상반기 중에는 처음으로 AI 학습을 한 로봇을 내놓을 예정이다. 여 대표는 "기반모델 단계는 아니지만 사람을 구분하는 등 AI 학습을 거친, 대동로보틱스의 첫 AI로봇"이라고 했다.

다음에 내놓는 것은 '방제로봇'과 '제초로봇'이다. 방제와 제초는 농업에서 가장 힘든 일로 꼽힌다. 기존에는 사람이 직접 독성이 있는 농약을 뿌리고 잡초를 제거해야 했지만, 이제는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 대동로보틱스는 두 분야 제품의 프로토타입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여 대표는 "기존 농약 살포 방식은 대량 살포로 인해 불필요한 지역까지 농약이 뿌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달리 방제 로봇은 AI 기반으로 작물 상태를 분석하고, 필요한 부분에만 정밀하게 살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면서 "이를 활용하면 환경 오염을 줄이고 농약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초 로봇 역시 단순한 풀 제거 기계가 아니다. 기존의 제초 방식은 사람이 직접 나서야 하거나, 제초제를 광범위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이는 토양 오염을 유발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제초 로봇은 AI 기반으로 잡초와 작물을 구분하고, 필요한 부분만 제거할 수 있다."

여 대표는 "다음 단계는 수확로봇인데 아무래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 로봇팔 하나만 해도 비싼 것은 1억원을 호가한다"면서 "수확로봇은 기술도 기술이지만 가격경쟁력을 함께 봐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여 대표는 특히 기반모델 단계의 AI와 결합하면 로봇이 포도면 포도, 딸기면 딸기, 사과면 사과의 특성을 학습해서 수확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그동안은 오렌지 한 가지를 따는 것조차 어려움이 있었는데 기반모델이 나오면서 가능성이 생겼다"면서 "운반로봇에 AI가 일부 적용됐지만, 앞으로는 더 발전된 AI를 접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시장 진출도 모색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고, 대형 농업이 발달해 있어 자동화 수요가 크다"는 여 대표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내년에 진출해 본격적인 승부를 걸겠다. 우리 로봇이 중국 제품보다 기능이 좋고 가격도 경쟁력이 있다. 일본 기업과도 겨뤄볼 만하다. 세계적으로 이 분야는 확실한 강자가 없이 비슷비슷하게 출발하는 상황이라 충분히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동로보틱스는 대동그룹의 영업망과 생산 시설을 활용하면서 연구개발과 사업전략에 집중하는 조직구조를 갖췄다. 이를 활용해 다른 로봇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도 돕겠다는 생각이다.

여 대표는 "국내 로봇 기업들이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시장에서의 경험과 영업망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대동그룹이 수십년간 투자해 확보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로봇이 농업을 변화시키는 시대를 여는 것이 제가 사회에서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고 말했다.

"연구현장과 산업현장은 다른 점이 많지만 알고 보면 대학 총장과 기관장도 세일즈를 해야 합니다. 연구자도 아이디어를 세일즈하고 가치를 보여줘야 누군가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죠. 그동안 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도전해 사업현장에서 성과를 내겠습니다."

안경애기자 naturean@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