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액 최소 9조원 이상 줄 듯
부품 관세 파장은 가늠 어려워
현대제철 철근공장 내달 셧다운
경제·일자리 후폭풍 대비해야
트럼프 2기 정부가 26일(현지시간) 전격 발표한 '수입차 25% 관세 부과'로 우리 수출전선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불과 이틀 전 현대자동차그룹이 4년 간 210억달러(약 31조원) 추가 투자계획을 내놓았을 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대는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게 되며, 그 결과 관세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며 "땡큐"를 연발했다.
'관세를 피하고 싶으면 대미 설비투자를 늘리라'는 미국 측의 요구에 응했던 만큼 정부는 물론 업계에서도 내심 우리나라가 관세 대상에서 빠지지 않았을까 기대했는데, 단 이틀 만에 물거품이 됐다.
익명을 요청한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투자계획을 내놓을 때만 해도 고맙다, 대단하다는 말로 실컷 추켜세우더니, 이제와서 보니 계략에 속아넘어간 것 같은 기분"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당장 이번 조치로 현대차·기아와 한국GM 등 기업을 비롯해 수출전선에도 심각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자동차 산업에 25% 관세를 매길 경우 올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작년 대비 18.59%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 분석에 지난해 기준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이 약 51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최소 9조5000억원 이상의 수출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씨티의 경우 한국산 자동차, 부품, 의약품, 반도체 등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0.203%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여기에 자동차 부품까지 더하면 더 큰 수출 감소가 예상된다. 트럼프는 오는 4월 3일부터 수입차에 25% 관세를 부과한다는 포고문에 핵심 부품에도 5월 3일 이전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까지 담았다. 엔진, 변속기, 파워트레인(전동장치) 부품, 전기 부품 등을 '핵심 부품'으로 지목했는데,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백악관에서 밝힌 '핵심 부품'의 정확한 HS코드(품목번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며 "그다음에 미국으로 수출되는 규모를 파악한 뒤 대응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이 워낙 다종다양하다 보니 실제 관세 범위를 특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미다. 한국자동차협동조합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통계분류코드(MTI)에서 총 64개의 HS코드가 자동차 부품으로 분류돼 있다.
조합이 분석한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82억2200만달러(약 12조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체 자동차부품 수출액은 총 225억4700만달러로 대미 수출 비중(36.5%)이 가장 컸다.
자동차는 일자리 집약형 산업이라는 점에서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단순히 수출 감소 그 이상이다. HMG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5.5로, 반도체(1.9), 철강(3.0)보다 월등히 높은 고용창출력을 보여준다. 여기에 정비, 세차, 주유, 운송 등의 일자리도 창출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 전기로 공장을 짓겠다고 한 현대제철은 이날 인천공장 내 철근공장 전체를 다음 달부터 한 달간 전면 셧다운하기로 했다. 현대제철 측은 "단순한 정기 보수가 아닌 시황 악화로 인한 감산 조치"라며 "당장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시장 정상화를 위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해당 공장에서는 철근과 형강을 생산하는데, 이 가운데 봉형강은 건설, 기계, 자동차, 조선, 에너지·플랜트 산업 등에 두루 쓰이는 기초 철강 소재다. 업계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중국산 저가제품의 한국 공세와 건설 등 수요산업 침체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자동차 관세에 4월 2일로 예고한 상호관세 등 후속 관세폭탄이 우리나라에 떨어질 경우 경제는 물론 일자리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했다.
이항구 전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작년 12월부터 관세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2~3달 치 재고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북미산으로 납품처를 변경해야 하는데 대부분 장기거래이기에 바로 바꿀 수 없으며, 결국 현지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 부품사는 수출물량이 거의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GM의 경우 이미 군산공장을 폐쇄한 상황에서 아예 한국을 빠져나갈 명분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임주희기자 ju2@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