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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칼럼] 트럼프와 강성노조가 만든 `新자본론`

박정일 기자   comja77@
입력 2025-03-30 18:09

박정일 산업부장


[박정일 칼럼] 트럼프와 강성노조가 만든 `新자본론`
현대제철이 연일 시끄럽다. 노조는 임금을 계열사 최고 수준으로 올려달라며 수개월 째 부분파업을 이어가고 있고, 사측은 일부 공장을 셧다운 한 데 이어 창사 이후 첫 전사 희망퇴직 신청까지 받는 등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수입 철강 25% 관세 부과 조치가 나왔고, 관세를 피하기 위해 현대자동차그룹은 미국 현지에 전기로를 새로 짓는 것을 포함해 4년 간 31조원에 이르는 투자 보따리를 트럼프 2기 정부에 안겼다.


이에 현대제철 노조는 국내 일자리를 줄여 미국 일자리를 늘려준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현대차그룹이 현 시점에서 찾을 수 있는 대안은 거의 없다. 이런 와중에 또 파업을 운운하니, 현대제철 사측으로선 답답할 노릇이다.
노동집약형인 자동차에 비해 철강은 상대적으로 자본집약형 산업으로 꼽힌다. 노동력보다 설비투자가 부가가치 창출에 더 큰 이바지를 한다는 뜻이다. 철강 뿐 아니라 현재 우리 경제를 지탱해주는 산업은 대부분 자본집약형이다. 대표적으로 단일 수출 1위 반도체가 그렇고 석유화학도 마찬가지다. 수출 상위 10개 품목의 대부분이 자본집약형이다.

자본집약형 산업은 매년 수조원의 시설투자가 이뤄지는 데 일자리는 크게 늘지 않는다. 노동력보다 설비투자가 부가가치 창출에 더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과거 초기 산업혁명 시대, 그리고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진 우리나라의 초고속 성장기때와 지금 한국의 산업 구조는 사뭇 다르다. 당시에는 자본은 물론 자원도 부족했기에 정부를 등에 업은 기업들의 노동착취가 빈번했다. 이에 1980년대 이후 노동운동이 힘을 얻기 시작했고, 대학가에서는 1980년대 후반까지 금서로 지정됐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유행처럼 퍼져갔다.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노동계의 성서 격인 자본론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지 궁금해서다. 사용가치, 교환가치 이런 개념은 생략하고 정말 간단하게 요약하면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주장한 것은 기업은 상품을 만들어 가치를 창출하는데, 자본가들은 더 많은 잉여가치를 내기 위해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려는 자본가들의 이기심은 점점 더 커지고, 노동을 대신하는 기계가 늘면서 실업자들이 늘어난다.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면 인건비는 더 내려가고, 노동자의 소비 능력이 저하되면서 결국 자본가는 망하고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자본론의 예언은 틀렸다. 무역 교역량이 늘면서 팔 곳이 많아졌고, 노동력을 수입하거나 수출할 수도 있게 됐다. 공장을 해외로 옮기는 일도 한결 자유로워졌다. 세계가 아직도 시장자본주의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개입도 있지만, 상품과 재화가 전 세계로 연결되는 세계화도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 자본론의 논리를 그대로 대입해보면 노동자 혁명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다. 먼저 반도체와 석유화학, 철강 등 자본집약적인 산업이 주류를 이루는 구조에서 자본은 더 이상 노동으로 잉여가치를 늘릴 수가 없고, 자본가들은 강해진 기업·노동규제로 인해 기계가 만든 잉여가치를 정부와 노동자에게 오히려 더 나눠주고 있다.

기업들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수출인데, 주요 수출국인 미국이 최근 자국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세금을 더 내야한다고 윽박지른다. 중국은 우리보다 더 싼 인건비와 정부의 통제, 최근에는 기술력까지 앞세워 우리 기업들의 설 자리를 뺏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거나 중국을 피해 산업구조를 전면 개편하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이 또한 우리나라의 여러 정책·노동 인프라를 고려하면 쉽지 않다.


국내 대기업 대졸자 평균 연봉은 세전 기준 7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미국·독일과 비슷한 수준이며, 대기업만 놓고 보면 일본보다 우리 연봉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대신 중소기업 근로자와의 임금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또 다른 계급주의라는 사회적 갈등을 만들고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우연히 접한 말이 있다.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소설'히페리온'에 쓰여져 있는 '지구상에 지옥이 만들어졌던 것은 항상 인간이 자신들의 천국을 만들려고 할 때였다'는 문구다. 지금 대한민국의 노사 관계가 이런 상황이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박정일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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