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외국산 자동차·부품와 석유화학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국내 배터리와 석유화학 업계가 비상 대응에 나섰다. 국내 배터리 3사는 미국 현지 생산 비중 확대를 생존 전략으로 삼고 생산기지 전환과 투자 계획을 재정비하고 있다.
3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소재별로 이날 오후 1시 1분부터 부과되기 시작한 25% 고율 관세 영향을 분석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미국은 양극재 등의 원재료인 리튬, 니켈, 코발트 등의 확보가 쉽지 않아 고성능 양극재를 현지 생산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 음극재의 핵심소재인 흑연은 전 세계 생산량의 90% 이상을 중국이 담당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 역시 80% 이상을 중국산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에선 흑연을 정제·가공할 수 있는 인프라도 거의 없는 수준이라 대체 수입선 확보도 어렵다.
◇LG엔솔 "7개 공장 건설·운영 중"·삼성SDI 타격 불가피=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소재 수급 불확실성이 크지만 현지 생산 확대를 통해 관세 리스크 최소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등은 기존 공장의 효율적 전환을 통해 생산라인을 최적화하는 '리밸런싱' 전략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GM과의 합작공장인 얼티엄셀즈 제3공장을 단독 인수하면서 총 3곳의 단독 공장을 확보했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관세에 따른 영향을 면밀히 분석해 대응할 예정"이라며 "미국에 총 7개의 공장을 운영·건설하고 있는 등 현지 생산 체계를 누구보다 먼저 구축한 만큼 관세 영향은 제한적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경쟁 우위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SDI의 경우 현재 가동 중인 단독공장이 없어 배터리 3사 중 관세로 인한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스텔란티스와의 두번째 합작공장과 GM과의 뉴칼라일 공장이 2027년 완공 예정인 만큼 대응 여력이 제한적이다.
삼성SDI는 단독 생산기지 확보에 대한 전략적 검토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주선 대표는 최근 열린 '인터배터리 2025'에서 "미국 공장 설립에 대해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논의 중"이라며 중장기 성장 전략의 일환으로 현지화를 강조한 바 있다.
◇석유화학업계 "품목별로 영향 엇갈릴 것"=국내 석유화학업계는 품목별로 25% 상호관세 적용 여부가 달라 영향을 파악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이 일부 제외 품목 리스트를 공개했는데 석유화학제품 일부가 여기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석유화학협회가 관세 부과 전체 리스트를 품목별로 집계해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특히 범용 석유화학제품은 이미 미국 내 경쟁력이 낮기 때문에 해당 제품군 위주의 수출기업은 상대적으로 타격이 클 수 있다.
또 주변국과의 경쟁력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같은 품목을 수출하는 경쟁 국가들인 대만, 중국 등과 비교해 한국산 제품이 더 낮은 관세를 적용받는다면 경쟁력의 유지가 가능하지만, 반대로 더 높은 관세일 경우 타격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만 일부 품목의 경우 이미 미국에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있다. LG화학은 오하이오주에서 연산 3만톤 규모의 ABS 컴파운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롯데케미칼은 루이지애나공장에서 에틸렌 100만톤과 모노에틸렌글리콜 70만톤을 생산 중이다.
LG화학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관세에 따른 사업 영향이 일부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북미는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 시장이므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관세 정책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어 중장기적인 영향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차별적 경쟁력이 있는 사업 기회를 적극 발굴해 북미 시장 공략을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박한나기자 park27@dt.co.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가 정식 발효된 3일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