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대응하겠다던 靑… 5일만에 ‘외교적 해법’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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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응하겠다던 靑… 5일만에 ‘외교적 해법’ 무게

임재섭 기자   yjs@
입력 2019-07-08 16:56

3일까지도 "WTO 제소 대응"
경제보복 치닫자 "日 경제강국"
文대통령 수보회의서 어조 바꿔
사실상 한발짝 물러선 모양새


대외경제장관회의서 발언하는 홍남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06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당시만 해도 일본에 대립각을 세웠던 정부의 태도가 최근 바뀌고 있다. 지난 1일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부품 등의 대한(對韓) 수출규제 강화 조치 발표 때 강경 대응을 시사한 것과는 다르게 최근엔 직접적 무역분쟁보다 우회적인 외교적 해법에 무게를 두는 양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 차분하게 노력해나가겠다"며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경제력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가는 경제 강대국"이라고 했다.

지난 3일까지만 해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선 확실한 입장을 가지고 대응할 예정"이라고 했던 청와대 반응과는 온도차가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일본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감광제, 불화수소) 수출규제를 발표한 뒤로 줄곧 강경대응 입장을 밝혔다. 또 지난 4일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하며 "(일본의) 보복적 성격의 수출규제 조치는 WTO 규범 등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수출 규제의 배경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정치적인 문제가 깔려있다는 점을 짚으면서 일본이 즉각 수출 규제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강한 어조였다.

그러나 주말을 지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 수출규제에 대해 발언한 것과 관련해 "국민들의 관심이 워낙 높은 사안으로,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양국 간 우호관계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촉구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대외경제 장관회의에서도 주로 원론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홍 부총리는 "우리 업계 및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소통, 공조 등을 통해 다각적이고도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해나갈 것"이라며 "우리 기업의 피해 최소화와 대응 지원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국제공조 방안 등 여러 가지를 검토 중"이라며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할 사안"이라고 했다. 정부는 유 본부장을 미국으로 파견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이날 한국에 수출한 화학물질이 북한으로 유입됐을 수 있다는 일본 정부의 의혹 제기에 대해 "대북제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강도가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란 점을 감안해 최근 정부가 차분한 대응 기조로 방향을 튼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 충돌보다는 미국, 중국 등 다른 국가의 협력을 얻고, 일본 측과 통상협의 일정을 조율하는 등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외교적 해법'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태도 변화는 일본에 단기적으로 피해를 입힐 만한 우리 측의 실질적 대응 카드가 없다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간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WTO 제소와 핵심소재 국산화 등을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국산화는 짧게는 3∼4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일 수밖에 없다.

일례로 반도체 웨이퍼에 내부 회로 설계도를 그릴 때 사용하는 감광제의 경우 한국은 거의 전량(90% 이상)을 일본 수입에 의존하는 반면, 국내 생산은 5∼6년 늦게 시장에 진입해 소재 품질력이 낮은 편이다. 플렉서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제조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역시 일본산 소재가 세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에 있어 당장 우리 기업의 생산 물량에 맞출 수 있는 대체 국가가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제성과가 급한 정부가 최근 기업인들과 잇따라 만나며, 경제계와 화응하는 차원에서 차분한 대응으로 돌아선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났고, 7일에는 홍 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업 총수들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기업들이 느끼는 경제 문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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