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광고 판매 시장에 경쟁체제 도입
유럽 주요국선 공ㆍ민영방송사별 분리 운영
진입방식ㆍ지분구조 등 사회적 합의 이뤄야
미디어법 통과 이후 그동안 수면 아래로 진행되던 민영 미디어렙 도입 논의가 다시 부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는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의 지상파방송 광고 대행 독점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올해 말까지 이를 해소하라고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9월 정기국회부터는 민영미디어렙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상파방송 독점 `헌법 불합치'=2008년 11월 28일 헌법재판소는 KOBACO가 방송광고 판매 대행을 독점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광고판매대행사인 T사가 "KOBACO와 KOBACO가 출자한 회사만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 대행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방송법은 평등권과 직업선택의 자유에 위배된다"며 낸 헌법 소원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현행 방송법 제73조 제5항과 시행령 제59조 제3항은 지상파 방송사업자는 KOBACO 또는 KOBACO가 출자한 회사가 위탁하는 방송광고물 이외에는 방송광고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당장 효력을 상실할 경우 시장이 혼란 상태에 빠질 것을 우려해 2009년 12월 31일까지 관련 규정을 개정토록 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에 따라 올해 말까지 방송광고 시장 경쟁 도입을 통해 광고 시장을 활성화하고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28년간 이어진 방송광고 독점=우리나라 방송광고 제도는 1980년 제정된 언론기본법을 근거로 1981년 KOBACO가 설립된 이래 단 한차례의 제도 개선도 없었습니다. 국내 방송광고 시장은 지상파방송사가 광고 시간을 KOBACO에 위탁판매하고 KOBACO로부터 광고비를 수주하는 구조입니다. 광고주는 KOBACO가 위탁판매하는 광고 시간에 대해 자사의 광고를 송출하는 대가로 KOBACO에 광고비와 위탁수수료를 지불하게 됩니다.
KOBACO에 의한 방송광고 독점은 방송사와 광고주간의 유착을 방지해 방송프로그램의 자본 종속을 방지하고 가격 규제(광고 단가 상한제)를 통해 시청률 경쟁을 제한, 방송프로그램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KOBACO는 광고 단가의 인상을 방지해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기능도 해왔습니다.
또, KOBACO는 지역방송, 종교방송 등 광고 시간을 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 3사의 광고 물량에 끼워 파는 이른바 `연계판매' 방식으로 취약매체를 지원해 왔습니다. 또, 다양한 방법으로 방송광고 시장 진흥에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같은 독점적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공영방송뿐 아니라 민영방송에까지 방송광고 판매를 독점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KOBACO의 설립이 80년 집권한 신군부가 지상파방송을 실질적으로 장악, 통제하기 위한 정치적인 배경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KOBACO 체제 비판론의 핵심 내용이기도 합니다. 방송사와 광고주간 직접적인 광고 거래를 금지함으로써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둔 것입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KOBACO의 방송광고 독점은 경쟁을 제한, 방송시장 성장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법적인 측면에서는 KOBACO 독점체제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적 계약 자유의 원칙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있어 왔습니다.
이에 따라 현행 KOBACO 독점 체제를 폐지하고 복수의 미디어렙의 설립을 허용해 방송 광고 판매 시장에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해외에서는 어떻게?=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 공ㆍ민영 방송사별로 미디어렙을 운영하고있습니다. 영국의 미디어렙은 공영과 민영으로 분리돼 각 영역별로 광고 판매를 대행하고 있습니다. 공영방송인 BBC1, BBC2는 광고없이 수신료만으로 운영되며 공영방송 채널4, S4C, 및 BBC월드는 공영미디어렙을 통해 광고 판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민영방송인 채널3(ITV) 및 채널5는 ITV의 자회사인 ITV 세일즈를 통해 광고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모든 공영 방송은 공영미디어렙 FTP를 통해 광고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민영방송은 각 방송사마다 자회사 형태의 독자적인 미디어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공영방송인 ARD와 ZDF는 자회사 형태의 공영 미디어렙을 통해 광고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민영방송인 RTL, RTL2, SAT1, Pro7 등은 자회사 형태의 미디어렙을 통하거나 직접 판매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공영방송인 PBS는 광고가 없으며 ABC, CBS, NBC 등 민영방송사는 내부 조직 또는 자회사 형태의 미디어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텐츠, 하쿠후도 등 대형광고대행사들이 미디어렙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복수 미디어렙 도입 쟁점들=방송광고 시장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쟁점에 대해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28년이란 긴 시간동안 이어진 독점 체제를 개선하는 만큼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선 미디어렙의 진입 방식을 허가제로 할지 승인제로 할지, 또는 등록제로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처음 도입하는 만큼 허가제를 통해 진입 장벽을 두는 방안이 유력한 상황입니다.
그 다음은 미디어렙의 성격과 수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를 두고 1공영 1민영, 1사1렙, 1공영 다민영 등 다양한 방식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는 방송광고 시장을 제한적 경쟁 체제로 할지, 완전 경쟁 체제로 전환할지에 대한 정책적 판단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미디어렙의 수를 법상으로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정체성 논란을 빚고 있는 MBC가 공영과 민영 미디어렙 중 어디를 선택할지도 관심사입니다.
미디어렙의 소유지분 구조는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될 것입니다. 향후 법 개정 과정에서 지상파방송사 및 대기업의 지분 제한을 어디까지 둘지를 놓고 여야가 격돌을 벌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 5월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복수의 미디어렙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는데, 이 법안에는 미디어렙의 1인 지분 제한을 51%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취약매체 지원, 방송광고시장 진흥 등 KOBACO 독점 체제가 가져다 준 순기능 및 공적 역할을 어떻게 계승할지도 정부의 숙제입니다.
강희종기자 mindle@
